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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
공화당·민주당, 우파·좌파 가릴 것 없이 모두 그녀의 정치능력과 인품을 높이 평가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것이다. 와일스 때문에.” 3년 전부터 그랬다. 그러기에 와일스 발탁에 누구도 토 달거나 트집 잡지 않았다.
■트럼프는 첫 임기 때 “가장 큰 실수가 인사였다”고 선거운동 중 반성했다. 좌파에 쉽게 항복하거나 타협하는 무늬만 보수인 인물(RINO: Republican in name only), 군산복합체에 얽히거나 마르크스주의에 물든 사람, 전쟁 개입주의자들을 기용했기 때문. 백악관 비서실장·법무장관(검찰총장)·국방장관과 합참의장·국가안보보좌관·FBI 국장 등.
인사 실수는 선거 직전까지 그를 괴롭혔다. 좌파매체들은 잘려 나간 사람들을 어김없이 불러내 트럼프를 비난하는 데 써먹었다. 이란 공격을 고집하고 지나치게 거들먹거리다 쫓겨난 존 볼턴 안보보좌관이 단골이었다. 볼턴 등은 책을 써 트럼프를 욕했다. 부풀리고 틀린 내용도 마구 썼다. 책을 팔기 위해. 그런 책들을 좌파매체들은 크게 선전했다.
미국의 법 제도에서 정치인 등 공인들은 명예훼손 소송에서 이기기 매우 힘들다. 대통령은 명예훼손을 아무리 당해도 소송 하지 않는 것이 오랜 관례. 앙심 품은 이들이 얼마든지 엉터리를 쓰는 이유다. 선거 직전. 해병대 대장 출신 비서실장 존 켈리는 “트럼프가 히틀러·나치를 칭찬했다”는 내용의 책을 냈다. 그러나 그 말을 했다는 자리에 있은 참모 여러 명이 “거짓”이라 반박했다. 매체들은 아랑곳없이 그 ‘거짓’을 집중 조명했다.
국무장관(CIA 국장에 이어)·재무장관·상무장관·국가무역위원장 등 4년을 함께 한 장관·참모들이 중간에 잘린 인사들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러나 매체들은 실패만을 편향해서 다뤘다. 트럼프는 문제가 많아 못 견뎌 다 떠난다는 인상을 만들었다. 트럼프가 인사 고민을 오래 할 것이란 예상도 그 때문.
■하지만 트럼프는 조금의 망설임 없이 와일스를 임명했다. ‘얼음 여왕’이라 불렀다. 별명에는 와일스의 성품·능력에 대한 그의 감상이 다 녹아 있다. 와일스를 이해하는 핵심 표현.
트럼프는 어떤 감정도 잘 드러내지 않는 냉정한 일솜씨를 칭찬하기 위해서 그렇게 불렀다. 그 보다는 배신한 정적을 응징한 와일스의 냉혹함이 그의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두려운, 가장 덜 알려진 정치 작전가.”
“미국에서 가장 무서운 인물. 대부분은 와일스가 누군지 모른다.”
”당신이 모르는 가장 강력한 공화당 인사.“
“트럼프의 ‘비밀 무기.’ 언론 조명을 피하는 성격의 노련한 정치 작전가.”
와일스가 트럼프의 선거 책임을 맡을 때부터 민주당 사람들·좌파매체는 늘 그렇게 말했다. 트럼프의 나쁜 점만을 골라 비난하는 이들도 와일스의 가치를 인정했다. 다들 긴장했다. 겁냈다. 대통령 후보 선거 책임자가 ”미국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꼽힌 적은 없었다. 다들 ”그녀가 누군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하는데도.
그들은 와일스의 뛰어난 정치능력이 민주당 재집권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겉으로 부드러운 그녀의 능력 속에 숨은 냉혹한 승부사 기질도 읽었다. 그래서 무서웠을 터이다.
■2020년 대선. 중요한 승부처 플로리다 여론조사에서 조 바이든에 밀리던 트럼프는 와일스를 다시 불러 선거운동을 맡기겠다고 결심했다. 백악관에서 주지사 론 디샌티스에게 전화해 알렸다. 그러나 디샌티스는 그녀의 신뢰성·능력에 의문을 나타내며 세게 반대했다. 와일스가 플로리다 선거를 지휘하면 “더 이상 적극 돕지 않겠다”고까지 말했다.
16년 대선. 와일스는 플로리다 선거를 책임져 고전 상황을 뒤집고 트럼프 승리를 만들었다. 이번엔 주지사 반대로 트럼프·와일스 관계가 깨질 위기. 그러나 트럼프는 더 이상 디샌티스를 배려하지 않았다. 와일스에게 다시 플로리다를 맡겼다.
이 ‘사건’은 미국 정치에 중요한 획을 그었다. 미래의 대통령 판도를 바꾸었다. 와일스의 능력을 두려워하던 사람들이 그녀에게 더 큰 무서움이 있음을 깨닫도록 했다.
디샌티스는 와일스에 대한 개인감정과 트럼프에 대한 배신 때문에 자기 발등을 찍었다. 밝기만 해 보이던 자신의 정치 미래를 그르쳤다.
그는 트럼프 이후 ‘공화당 대통령’의 가장 유망주였다. 예일 대·하버드 법대. 해군 특수부대 ‘실(Seal) 1’ 법무장교로 이라크 참전.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배경들을 가졌다. 코로나 사태 때 바이든 정부·매체들의 협박을 무시하고 백신 의무 등 어떤 규제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도 플로리다를 코로나 발병률이 가장 낮은 주로 만들었다. 좌파들과 거침없이 싸우는 용기와 뛰어난 정책능력에 보수층이 열광했다. 트럼프의 부통령이 되고 그 다음에 8년 대통령을 하면 12년 계속 보수가 집권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19년 와일스와 디샌티스의 갈등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이었다. 디샌티스는 주지사 선거에서 이길 희망이 안 보이자 트럼프를 찾아가 간곡하게 도와 달라했다. 트럼프는 와일스를 추천했다. 그녀는 디샌티스 0.4% 역전승의 절대 공헌자로 꼽혔다.
그는 팔랑귀였다. “중요 정보를 흘리고 이권에 개입했다”는 가족 등 주위 말만 듣고 취임하자마자 와일스를 쫓아냈다. 트럼프 덕에 주지사가 되었으나 부통령 후보를 마다했다. 대신 대선 불출마를 “굳게” 약속했다. 하지만 귀가 얇은 그는 공화당 등 보수 내 ‘트럼프 중오자들’ 꾐에 넘어갔다. 월스트리트·실리콘 벨리 재벌들도 부추겼다. “트럼프는 절대 당선 안 된다. 이번엔 당신이다.”
디샌티스는 경선에 뛰어들었다. 트럼프는 배신감이 컸다. 디센티스를 견제하는 일이 중요했다. 경선 도중 오로지 디샌티스만, 지나치다 할 정도로 심하게 몰아쳤다. “너무하지 않나? 오히려 역작용?”이란 생각이 들 정도. 그러나 그 전략은 먹혔다. 디샌티스 지지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큰 상처를 입고 일찌감치 포기했다.
정치인들은 와일스의 작품이라 했다. 그들은 진작 “디센티스가 그녀를 쫓아낸 날을 후회할 것”이라 예상했었다. 와일스가 일을 꾸밀 거라 봤다. 그녀는 선거 민심을 잘 알았다. 그의 약점을 훤히 알았다. 마침내 트럼프와 자신을 배반한 디샌티스를 처절하게 응징해버린 것.
억울하게 당한 감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 보다 배신을 용서하지 않으려는 트럼프의 의중을 꿰뚫고 냉혹한 승부수를 던졌다. ‘얼음 여왕’이란 단어가 트럼프 마음속에 자리 잡은 계기였다. 트럼프는 ‘검은 정부’ 해체와 불법 이민자 추방 등 어려운 개혁의 추진·성공을 위해서는 냉혹한 와일스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굳혔을 것이다.
디샌티스의 정치운명은 판단 실수로 바뀌어버렸다. 두 사람에게 정치신의를 지켰다면 제이디 밴스 대신 부통령에 당선되었을 터. 2028년 대통령이 될 가능성도 컸다. 이젠 후보 경쟁자도 되기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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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후보’가 확정되자 그녀는 “승리하는 법을 알고 있다”는 평을 들었다. 참여한 정치인들 선거에서 다 이겼기 때문. 40년 이상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과 시장·주지사·연방 하원의원 등의 선거에서 일했었다.
트럼프는 21년 의회 난입 사건을 선동했다고 몰렸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 등 많은 사람들이 등을 돌렸다. 민주당은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했다. 트럼프는 혼란·절망에 빠진 보좌진을 다잡을 사람이 필요했다. 두 번이나 자신의 플로리다 승리를 일구었던 와일스 선택은 자연스런 흐름의 결과. 백악관이 목표인 전국 선거에는 경험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21년 3월 새 관찰과 빵 굽기를 좋아하는 와일스를 최고 참모로 삼자 정치인·평론가들은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 입을 모았다. CNN조차 16명을 취재한 뒤 “대부분 그녀를 완벽한 전문가로 평가한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선거조직과 운동의 특징은 안정·절제·질서였다.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이전 두 번과는 많이 달랐다. 관리·조정·전략에 뛰어난 와일스가 그렇게 만들었다.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주는 접착제 역할”을 했기 때문.
트럼프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통해야 했다. 하지만 이전 책임자들과 달리 와일스는 트럼프가 누구와 대화하는지 꼼꼼히 살피지 않았다. 주변 인물들과의 접촉을 막으려는 노력도 잘 하지 않았다. 문고리 권력의 완장 찬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트럼프 세계’의 모든 것을 장악했다. 각종 기소 등 온갖 공격을 헤쳐 나갔다.
그녀는 트럼프 주위 사람 모두로부터 존경 받았다. ‘트럼프 세계’의 세력 싸움에서 적을 만들지 않았다. 공화당 하원의원은 “트럼프 세계는 살아 움직인다. 끊임없이 변화한다. 와일스는 그곳의 기둥”이라고 말했다. 법무장관에 발탁된 메트 게츠는 “와일스는 내가 함께 일한 사람 중 가장 체계를 갖춘 정치참모다. 어떤 정치위기에도 결코 당황하지 않고 멀리 내다본다. 뛰어난 관리능력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트럼프는 언제나 와일스를 곁에 두었다. 외국 정상들 회담에도 배석시켰다. 누군가와 전화 할 때도 그녀를 대화에 참여토록 했다. “수지를 여기로 부르자.” “그것 수지한테 꼭 말해라.” 트럼프 입에 붙은 소리였다.
트럼프는 정치 전략부터 전용기 장식까지 거의 모든 문제를 와일스와 상의했다. 그녀 말을 잘 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뜻을 제시하며 때론 반대의견도 냈다. 그러나 자기 판단을 트럼프 의견에 지나치게 앞세우지 않았다.
첫 임기 때 트럼프와 이념이 다르거나, “워싱턴 정치를 잘 모른다”며 그를 무시한 참모들이 자기 의견을 고집했다. 갈등·충돌이 많았다. 와일스는 그것을 잘 알았다. 트럼프가 제시하는 방향을 따라가며 현명한 전략·인재 동원으로 그의 계획을 실현했다.
트럼프는 연설 때 무대 가장자리에 손을 모은 채 서 있는 와일스를 가리키며 “나서 말하거나 사진 찍히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일을 하고 싶어 할 뿐”이라고 말했다. 당선 후 첫 연설 때도 가족과 밴스 다음에 와일스를 불러냈다. 한마디 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뇨‘라며 바로 옆으로 물러섰을 뿐이었다. 대통령을 만들었지만 겸손했다.
백악관 비서실장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군 조직을 바탕으로 처음 만들었다. 이후의 대통령들도 이어받았다. 대통령을 넘어서지 않으면서 대통령과 그 주위 모든 것을 관리·장악해야 하는 자리. 와일스의 낮은 접근 방식은 변동성이 큰 트럼프가 필요한 균형 역할을 했다. 트럼프 측근들은 차분한 접근법을 존중했다. 와일스는 앞으로도 드러나지 않게 모든 것을 챙길 것이다.
와일스는 67세. 소셜미디어에 ‘특기’는 “혼돈에서 질서 창조,” 가장 큰 자산은 “상황과 인식을 뒤바꾸는 능력”이라 소개했었다. 와일스가 트럼프를 잘 다독이는 것은 아버지를 다뤘던 훈련 덕분이라 한다. 아버지는 유명한 프로 미식축구 선수 출신의 방송 해설자였다. 트럼프처럼 주목받기 좋아하는 거친 야망이 넘치는 사람. 와일스는 트럼프가 정치상황을 보다 냉정히 인식하고, 보다 침착하게 대응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녀는 트럼프와 9년을 함께 일했다. “모두들 내가 아는 것을 안다면 트럼프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완벽하냐고?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가 아는 것은 모른다. 트럼프 정책을 이해하려면 트럼프 성격도 함께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좋은 것, 나쁜 것 다 받아들인다. 내가 알게 된 트럼프는 (매체들 비난처럼)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의회 난입 사건도) 그가 부추기지 않았다. 나는 그가 옳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을 101% 확신한다.”
■트럼프는 벌써 검은 정부 해체에 나섰다. 합참의장 등 군부의 완전 물갈이를 위한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FBI 국장 파면, 검찰 수뇌부 전면 교체 등도 곧 할 것이라 한다. 국방장관과 법무장관의 이른 내정도 그 때문.
그러나 선거에서 크게 이겼다고 쉽게 정치할 수 없다.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 많다. 좌파매체들은 조금도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민주당은 새 정부 방해를 시작했다.
다른 반대 세력은 공화당의 ‘무늬만 보수들.’ 은퇴하는 상원 대표 미치 멕코넬이 그 상징이다. 지난 8년간 트럼프를 가장 방해한 인물 중 한명. 새 대표 등 비슷한 성향의 상원의원이 60% 가량이다. 쉽게 협조하지 않을 것이다.
보수우파들이 상·하원 다수를 만들어줘도 공화당은 얼치기 보수들 때문에 늘 민주당에 항복해 보수정책을 현실화하지 못하는 오랜 전통을 가졌다. 단결력이 약하다. 그래서 미국이 사회주의로 가고 있다고 지지자들은 비판한다. 이번이라 크게 달라질 것으로 기대 하지 않는다.
트럼프의 개혁은 어느 것이든 치열한 투쟁 속에서 이뤄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무서운 승부사” 윌리스의 진정한 정치실력이 드러날 것이다.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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