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우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에서 활동 중인 네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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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디터 박단비 |
[북에디터 박단비] 요즘 한국 사람들은 MBTI(성격유형검사)에 푹 빠져있다. 띠, 별자리, 혈액형에 이어 찾아낸 조금 더 정교한 분류법이랄까? 자신과 타인을 분석하고, 파악하는 것에 아주 진심이다.
그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T와 F로 구분이다. 흔히 T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을 추구하는 타입, F는 감성적이고 대인관계를 중요시하는 타입이다. 더 쉽게 표현하자면 T는 좀 딱딱하고 차가운 사람, F는 자상하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의미다.
문제는 대다수 콘텐츠에서 T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냉혈한으로 묘사된다는 점.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T만 온 국민의 미움받는 느낌이다. 예로부터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은 간신, 상처를 주더라도 직언을 하는 사람을 충신이라고 했건만. 도대체 T가 뭘 잘못했다고!
물론 이해가 되기는 한다. 삶은 항상 괴롭고 힘든 일투성이니, 말이라도 예쁘게 건네는 사람이 더 좋겠지. 하지만 세상에는 T가 필요하다. 좋은 것만 보고 좋은 말만 듣기에도 짧은 인생이지만, 인간의 발전과 반성, 성찰을 위해서는 쓴 말도 필요하다. 현실을 아프게 직시할 필요도 있다. 자기성찰과 반성이 없었다면 인류 사회는 이렇게까지 발전할 수 없었겠다.
자, 그러니 이제는 현실을 좀 직시해 보자. 쇼펜하우어의 T 발언 모음집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를 읽으면서.
쇼펜하우어는 요즘 기준으로, 대문자 T임에 분명하다. 그의 이야기에는 희망이 별로 없다. 주로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만 골라서 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외로웠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온 세상이 인정하는 명제들이 나를 만나 무너지는 것을 본다. (…) 다른 사람이 말하지 않는 진실을 나는 한 권의 책으로 무한히 써내려갈 것이다. 나는 한 가지 사실만 잊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인생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평가, 새로운 개연성이 필요하다는 것!”
쇼펜하우어 이야기에는 중독성이 있다. 그만큼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고통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내 이야기인가’ 싶은 부분이 한두 부분이 아니다. 그의 글에서 1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괴로운 상황과 고민이 맞닿아 있음을 느낀다.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도 어렴풋이 이해한다. 그가 말하는 최악의 현실에서, 지독한 T 발언에서 역설적이게도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다.
“내가 청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뭔가를 얻기보다는 뭔가를 제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라는 것이다. 돈을 벌어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가난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 건강해지려는 욕심을 버리고, 병에 걸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즐겁게 놀기보다는 욕을 먹거나 비난받지 않도록 한다.”
따뜻하고, 희망적인 위로에서 특별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면, 새로운 자극과 견해로 내 삶을 발전시키고 싶다면, T의 진정한 매력을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한다.
마지막으로 쇼펜하우어에게 두 마디 남기겠다. 쇼펜하우어, T와 F의 균형을 위해 애써줘서 고맙소. I’m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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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디터 박단비 |
|북에디터 박단비. 종이책을 사랑하지만 넉넉하지 못한 부동산 이슈로 e북을 더 많이 사보고 있다. 물론 예쁜 표지의 책은 여전히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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