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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
이는 더 큰 가치와 이상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면 폭력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해석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어떤 이유에서든 폭력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손실로 이어지며 윤리 원칙과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는 것. 그러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더 큰 선”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비극의 역설이라고도 한다.
최근 이 말이 미국인 사이에서 새삼스레 떠올랐다. ‘루마니아 헌법재판소’를 겨냥한 분노의 경고로 쓰였다. 왜 미국인들이 먼 나라 루마니아 헌재에 분노했는가?
■헌재는 대통령 선거 결과를 정당한 근거 없이 지워버리는 결정을 내렸다. 전례 없는 일. 그 결정에 조 바이든 정부와 유럽연합(EU) 등 좌파 글로벌리스트들이 깊숙이 개입했다. 그들은 보수주의 포퓰리스트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헌재에 ‘러시아 공작’ 등을 주입 시켰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세력이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러시아 푸틴의 간첩’이라고 조작한 것과 거의 같은 수법.
루마니아 헌재는 CIA 등 다른 나라 정보기관들이 준 자료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루마니아 민의를 짓밟았다. 보수우파 미국인들은 바이든 정부가 16년 대선 때와 비슷한 방법으로 남의 나라 선거에 개입한 것에 분노했다. 세계 좌파들의 정치 공작에 독립성을 포기하고 자유민주주의를 붕괴한 루마니아 헌재를 없애야 할 존재로 봤다. 선거 결과를 무시한 헌재 결정을 ‘민주주의(Democracy)’가 아니라 ‘악마주의(Demonocracy)’라 비판했다.
2024년 12월 6일. 루마니아 헌재는 11월 24일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 1차 투표 결과를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해외 거주자 투표에서 칼린 조르제스크에 대한 압도 지지율을 확인한 후 선거 결과를 무효로 했다. 두 번째 선거를 취소했다.
1차 투표에서 승자 조르제스크는 현재 좌파정권과는 정반대의 보수주의 포퓰리스트. 여론조사 5% 지지율의 이름 없던 정치인. 그러나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다. 2차 결선투표를 앞둔 여론조사에서도 2위에 10~15%로 앞섰다. 헝가리를 중심으로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조지아, 스페인, 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등에서 거세게 일고 있는 보수주의 포퓰리즘 바람 덕분이었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루마니아는 EU·나토 편향 정치에서 벗어나 포퓰리즘 국가들과 가까워질 것이다. 루마니아 정치변화는 EU의 통제 세력에게 마지막 경고였다. 루마니아마저 포퓰리스트에게 넘어가면 유럽 세력 판도는 EU가 더는 힘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1차 투표가 끝나면서부터 루마니아 국민 사이에서 불길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루마니아는 유럽에서 가장 부패한 나라 가운데 하나. “현재 정권과 미국·EU 등 좌파 글로벌리스트들이 우크라이나 지원을 반대하는 조르제스크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헌재는 소문을 현실로 바꿔버렸다.
■원래 헌재는 1차 결과의 합법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겨우 나흘 뒤 결정을 뒤집고 무효로 만들었다. 국가 최고결정 기관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 스스로 권위와 정당성을 포기했다. 헌재는 루마니아 정보당국이 대통령 요청에 따라 해제한 CIA와 EU 등에서 제공한 정보에 근거해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려 준 꼴. 기막힌 구실을 CIA 등이 주었다.
헌법재판소는 “조르제스크 인기는 틱톡 같은 소셜미디어 덕택이다. 소셜미디어에서 우대받았다. 그 때문에 유권자 의사가 왜곡되었다. 모든 대통령 후보에게 평등한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원칙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인터넷 활용 등 선거운동 방법의 다양성을 무시한 억지 논리다. 헌재는 특정 국가가 개입했다며 러시아를 간접 지목했다. 기다렸다는 듯 미국·유럽의 좌파매체와 미 국무부는 러시아를 비난하고 나섰다.
엄정·정직한 사법부라면 다른 나라 개입을 거부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헌재는 아무 조사도 없이 남의 나라 정보를 그대로 수용했다. 진실성을 뒷받침하는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충분한 설명 없이 선거 결과를 없앴다. 다음 선거는 취소했다. 외국의 정보공작 도움을 받은 희대의 판결이었다.
헌재는 좌파정부 유지를 위해 독립성을 포기하고 마음대로 법을 적용하는 법 권위주의에 빠져 독단·횡포를 부렸다. 법치주의를 저버렸다. 악마주의의 실천. 헌재는 바로 “악마주의 화신”으로 불린다.
헌재는 루마니아에서 대통령 선거를 감독하고 취소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다. 재판관은 9명. 3명은 하원, 3명은 상원, 나머지 3명은 루마니아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다. 한국 헌법재판소나 미국 연방대법원처럼 루마니아 헌재도 “정치 임명으로 가득 차 있다.”
■루마니아 국민은 외세 개입에 의존한 헌재 결정에 충격을 받았다. “법원은 결코 성역이 아니다. 법의 이름으로 독단·횡포를 부리는 법원과 재판관은 존재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며 루마니아 안팎의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
부쿠레슈티 대 헌법 교수는 “헌재가 공식 소송도 없이 선거 결과를 취소한 것은 정상이 아니다. 헌재는 민주주의를 방어하려는 선의로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하지만 정당성·신뢰성이 부족하다. 국민은 외국의 정보가 선거를 무효로 만들 만큼 중요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헌재는 증거 없이 그저 애매한 표현으로만 말했다”고 비판했다.
외국인들도 마찬가지.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의 대학 교수는 “많은 나라 선거에서 이런 종류의 일을 본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인들은 자국 정부 개입을 부끄럽게 여겼다. “헌재 결정은 완전 불법,” “루마니아 민주주의는 이미 아무도 모르게 죽었다,” “국제개발처(USAID)가 은밀하게 일을 꾸몄다”고 했다. 국제개발처는 “CIA의 지갑이며 행동대”라 불린다. 세계 좌파언론과 단체 등에 대한 지원으로 거의 해체 직전에 몰렸다. 그 기구가 주목된 것이 흥미롭다.
심지어 “그 판사들은 아주 좋은 숨을 곳을 찾아야 한다. 이런 일은 농기구·횃불, 흡혈귀들이 나오게 만든다”는 섬뜩한 비판도 나왔다. 루마니아 헌재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변명했으나 “민주주의를 파괴한 악마주의 화신”이 되어 저주를 받고 있다. 오죽하면 헌재 지우기를 뜻하는 “민주주의를 위해 민주주의를 파괴해야만 한다”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루마니아 현재 사태’는 그저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준다. 대한민국도 비슷한 상황. 한국 헌재는 어떤 결정을 할까? 헌법의 원칙을 준수해 민주주의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악마주의를 따를 것인가? 8명의 재판관을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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