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 칼럼-국제정세의 진실] 목숨 걸고 보수주의 지킨 흑인 연방대법관…대한민국엔 왜 토머스 같은 재판관 없나

편집국 / 2025-02-06 14:43:30

  ▲클래런스 토머스 미국 연방대법관. /위키피디아 캡처

■1995년 7월. 미국의 변호사·작가며 보수주의 여성 운동가로 유명한 필리스 슐래플리(당시 71세)는 47세 젊은 연방대법관 클래런스 토머스에게 시를 헌정했다.

“우리의 가장 뛰어난 대법관, 당신은 시대를 초월한 법관.
좌파 진영을 분노케 하는 존재.
좌파의 파괴를 막아내고, 용기 있는 결단력으로 헌법 조문을 지키는 당신.
우리는 기쁩니다.
당신이 헌법 조항을 남용하는 좌파의 손을 막아주는 것을...
부디 흔들리지 말고 헌법의 원래 의도를 추구해 주세요.
당신이 맞서는 그 모든 어려움을 지켜보며,
평생 그 자리에 있어 주심에 신께 감사드립니다.”

이후 30년. 슐래플리의 보는 눈은 정확했다. 헌시는 헛되지 않았다. 토머스는 슐래플리의 바람대로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미국 법조계 보수주의의 상징이다. 목숨을 노리는 좌파의 위협이나 정치권 압박에 무릎 꿇지 않았다. 헌법의 기본정신에 충실하며 작은 정부, 가족·종교·생명의 보호 등 보수우파의 원칙을 지켜왔다. 마르크스주의에 뿌리를 둔 ‘정체성 정치’·‘소수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 등을 강하게 반대해 왔다. “두려움 없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법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현재 77세인 토머스는 연방대법원 사상 두 번째 흑인 대법관. 그러나 236년 역사의 첫 번째 흑인 보수주의 판사다. ‘흑인’·‘연방대법관’에 ‘보수주의’가 겹치면 초인의 인내심과 소신·용기·투지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법관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생존조차 힘들다. 미국 흑인 역사상 처음 그런 사람이 된 토머스는 상상하기 힘든 고통을 이겨내야만 했다. 그의 부인도 백인 변호사에다 보수주의 운동가란 이유로 온갖 공격을 감당해야만 했다.

■토머스 같은 재판관이 대한민국에는 진정 없는가? 이 글을 쓰는 이유와 목적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할 판사들을 바라고 기다리기 때문이다.

토머스는 대법관 재임 34년간 여러 차례 살해 위협을 받아왔다. 2003년에는 “대법원 건물을 폭파할 것이다”고 협박한 남자가 기소되었다. 22년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후 토머스를 향한 살해 협박이 급증했다. 소셜미디어 사용자들은 그의 암살을 선동했다. 24년 토머스 등 연방대법관 6명과 가족에게 465건의 협박 문자를 보낸 남자가 기소되었다.

그뿐 아니다. 좌파 유명인들은 미국 사회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는 갖은 욕설을 토머스에게 해댔다. 같은 흑인들이 앞장섰다.

여자 흑인 연방하원의원(현 로스앤젤레스 시장): “민권의 적. 진짜 흑인이 아니다. 흑인들을 탄압한 비밀단체 ‘쿠 클럭스 클랜(KKK)’ 단원이다.”
흑인 작가·핀란드 대사: “토머스 얼굴에 밀가루를 바르면 KKK 단원처럼 보인다.”
여자 흑인 경제학자·대학 총장: “토머스의 아내가 그에게 달걀·버터를 많이 먹여서, 많은 흑인 남성들이 그렇듯 심장병으로 일찍 죽길 바란다. 정말로 혐오스러운 사람.”
흑인 샌프란시스코 시장: “토머스는 인종차별을 위한 앞잡이이다. KKK를 정당화한다. 흑인 사회로부터 배척당해야 한다.”
흑인 목사: “예수에 대한 유다, 시저에 대한 브루투스 같은 존재다. 그의 배신에 수치심을 느낀다.”
흑인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 “‘하우스 니거.’ ‘손수건 머리’에 ‘치킨과 비스킷을 먹는 엉클 톰’.”
백인 배우: “더러운 쓰레기. 소름 끼치는 괴짜.”
여자 흑인 작가: “(바깥은 검지만 속은 백인 같은 사람이라는) 오레오, 비겁한 놈.”
흑인 주 상원의원: “엉클 톰인 그의 보수주의 입장 가운데 기분 나쁜 것들이 수두룩하다.”
소셜 미디어: “우리는 토머스를 죽여야 한다. 죽여라. 죽여라!”

보통 인간이 살면서 이보다 더 심한 저주를 당할 수 있을까? “엉클 톰”이나 “하우스 니거(House nigger)” “손수건 머리”는 “흑인들을 배신하고 백인들에게 굴종하는 흑인 노예”라는 뜻. 매우 심각한 인종차별. 거의 모든 맥락에서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된다. 테러집단인 ‘KKK’도 마찬가지.

그러나 명색에 연방대법관인 토머스에게는 예외였다. 살해 협박과 심한 정치 압박·따돌림에다 경멸·저주·조롱 등 극도의 인종차별 모욕이 담긴 단어·표현들이 마구 퍼부어졌다. ‘죄’라면 흑인으로 보수주의 대법관이 된 것뿐. 1991년 지명 때부터 시작된 좌파들의 온갖 공격은 34년 동안 한시도 끊어진 때가 없다.

■미국에서는 연방대법관 한 명이 법체계는 물론 국가 운영 등 정치·사회·경제 전반에 걸쳐 수십 년간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연방대법관은 사법부 최고 법관. 특별한 사유(탄핵·유죄 판결) 없이는 물러나지 않는 평생직. 공식 행사에서 국가 원수급 예우를 받는다.

그래서 연방대법관 임명을 둘러싸고 보수우파와 좌파는 명운을 건 전쟁을 벌인다. 공화당 조지 부시 대통령이 토머스를 연방대법관에 지명한다는 소문이 돌자마자 좌파들의 무자비한 공격이 시작됐다. 당시 조 바이든 의원이 주도한 상원 청문회는 ”흑인을 대상으로 한 고도의 집단 매질“로 묘사되었다. 그만큼 악랄하고 정교한 작전으로 임명을 막으려 했던 탓. FBI는 신원조사 보고서를 조작했다. 민주당 보좌진들은 기밀인 보고서를 빠짐없이 좌파매체에 흘렸다.

미국 매체들을 거의 장악한 좌파들은 압도하는 화력으로 눈엣가시가 되는, 그들의 길에 걸림돌이 되는 보수우파들은 사정없이 두들겨 팬다. 가짜 뉴스, 왜곡·조작·과장을 서슴없이 한다. 그래서 보수우파들은 좌파들과 다른 점을 말하는 데 공포를 느낀다. 웬만하면 자신의 이념을 감추고 산다. ‘벽장 보수’다. 정치인·법관·지식인에 “이름만 보수” “무늬만 보수”가 유달리 많은 이유. 판사들도 좌파들 눈치를 너무 많이 살핀다. 좌파 이념을 편들기 일쑤. 물론 이념 충성도가 약한 보수우파의 특질 탓도 있지만.

■좌파들은 보수우파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만만하게 본다. 그들의 비판·공격이 형편없이 약하기 때문. 민주당 대통령이 지명하거나 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된 판사들은 일방으로 보수우파들에게 불리한 판결을 한다. 좌파나 동조자들은 일방 보호한다. 법리는 물론 상식마저 무시한 도저히 납들할 수 없는 결정이 수두룩하다. 그래도 부끄러워하거나 눈치 보지 않는다. 한국의 좌파 판사들과 똑같다.

민주당·좌파들은 흑인의 성공을 원치 않는다. 그들이 영원히 하류계층으로 남아 자신들을 지지해 주는 집단이 되기를 바란다. 정권 유지, 정치 목적을 위해 흑인들을 악용할 뿐이다.

그런데도 좌파의 전위대 흑인들이 보수우파 흑인을 가장 극렬하게 공격한다. 흑인 보수주의자를 흑인에 대한 배신자로 여기는 탓. 1964년 이후 흑인의 80~95%가 민주당 후보를 지지해 왔다. 그러니 흑인이 공화당 정치인, 공화당 지명으로 법관이 되는 것은 흑인 사회에서 용서받기 쉽지 않다. 흑인이 보수우파라면 백인보다 훨씬 더 단단해야 살아남는다.

그런 분위기에서 흑인 토머스가 역사상 처음 공화당 대통령으로부터 연방대법관 지명을 받았다. 그가 고난의 길을 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하지만 토머스는 보수우파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대법관으로서 흠잡을 데 없는 경력을 유지해 왔다. 법정 밖의 활동 등으로 사건을 피해야 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는 다른 어떤 대법관보다 더 많은 보수 성향 재판연구관을 배출해 왔다. 여전히 목숨 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1973년 연방대법원은 ‘로 대 웨이드’ 판결에서 미국 역사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낙태권을 허용했다. 미국 사회가 급격히 왼쪽으로 가도록 만든 판결 가운데 하나. 공화당 대통령들이 지명한 5명의 대법관들이 보수우파를 배신한 결과였다.

■2022년. 숱한 논란을 일으킨 ‘로’ 재판의 위헌성을 다룰 판결을 앞두고 토머스는 “(연방대법원은) 협박당하는 기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당당하게 강조했다. 좌파들의 살해 위협이 끊이지 않는데도.

토머스는 좌파들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내 인생에서 나에게 문제가 될 사람들을 잘못 보고 있었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문제가 될 사람은 KKK 단원이나 시골 보안관일 것’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하지만 모든 것을 겪고 보니 가장 큰 장애물은 현대의 좌파들이었다. 그들은 남들을 조롱할 힘을 가졌기 때문에 무엇이든 무시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강단 때문에 토머스는 “보수 진영을 지탱하는 정신 지도자” “배신하지 않는 대법관” 등으로 불린다. 공화당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지명한 존 로버츠 대법원장에 대한 평가와는 극명한 대조다. “로버츠는 민주당·급진 세력의 위협·압력에 계속 굴복해 왔다. 폭력 좌파들이 노려보기만 해도 곧바로 무릎 꿇고 굴복한다. 나약한 존재며 수치스러운 인물”이라 한다.

지금 한국 사회가 간절히 바라고 기다리는 판사는 “폭력 좌파들이 노려보기만 해도 곧바로 무릎을 꿇고 굴복하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다. ‘한국의 토머스’다. 많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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