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 칼럼-국제정세의 진실] 미국 상무장관 내정 루트닉의 경제관과 인생 역정…그의 삶은 영화다

편집국 / 2024-12-26 15:19:14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상무장관으로 지명한 정권인수위원회 공동위원장 하워드 루트닉. /X(옛 트위터) 캡처
‘하워드 루트닉’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에게 가장 넓고도 깊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앞으로 4년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는 정권인수위원회 공동위원장. 다음 정부 구성을 위한 인물과 정책 마련에 깊숙이 관여했다. 그러면서 상무장관에 내정됐다. 미국 무역대표부를 관리·감독하는 책임까지 맡았다.

트럼프는 경제안보가 국가안보라는 원칙을 세웠다. 관세를 경제안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전략도구로 여긴다. 이러한 트럼프의 경제원칙을 최일선에서 실천할 인물이 바로 루트닉이다. 상무부의 가장 큰 임무는 공정무역 확보. 관세란 무기를 활용, 다른 나라들의 불공정 거래관행을 막는 것이다. 상무장관은 무역중심 국가인 대한민국이 국무장관, 국방장관과 함께 가장 많이 상대해야 장관. 적절한 대응을 위해 그의 경제관·경제현실에 대한 인식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그러나 루트닉의 인생을 아는 것도 필요하다. 개인의 삶은 개인의 인격·사고·이념을 형성한다. 동시에 그것들을 반영한 결과가 삶이다. 루트닉이 어떤 정책구상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실천할지는 그가 걸어온 길을 통해서도 가늠할 수 있다.

루트닉 같은 인생을 어디에서 또 찾을 수 있을까? 20억 달러(약 2조 9000억 원) 재산을 가진 금융인이며 위성을 다루는 기술회사 소유주. 그러나 그의 삶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비극과 놀라운 극복이 맞물려 있다. 9‧11 테러 비극의 상징. 직원 658명을 잃었다. 자신은 기적처럼 살아남아 35일 간 하루도 빠짐없이 스무 번씩 장례식에 가야만 했다. 돈도 모두 잃었다.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다. 하지만 잿더미를 헤치고 완전 빈손에서 다시 일어섰다. 그의 인생은 바로 영화다.

■프랑스와 독일의 좌파 집권 연합이 무너졌다. 조지아와 루마니아 국민들은 좌파 유럽연합의 개입을 거부했다. 요동치는 국제정세의 기원은 여느 때처럼 경제 문제다. 다보스 포럼을 운영하는 ‘세계경제포럼’은 글로벌리즘의 본산. 코로나 사태 이후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 의제를 추진해 세계에 에너지 위기를 일으켰다. 이른바 ‘깨끗한 에너지’ 정책의 부작용은 컸다. 유가 인상은 여러 나라에 인플레이션을 가져왔다. 생활비·식료품 가격·난방비·연료비·농업비용·교통비 등의 급등은 좌파 에너지 정책 영향 탓이었다.

좌파 에너지 정책을 밀어붙이다 스스로 경제의 발목을 잡은 서유럽 국가들은 트럼프가 앞으로 가져올 영향을 감당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그들도 안다.

서유럽 국가들은 지난 30년 이상, 2차 대전 이후 경제부흥을 위해 미국이 지원한 ‘마셜 계획’ 관세를 유지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한 국방비 의무 지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 덕분에 무료의료 같은 최고 수준의 복지국가가 되는 번영을 누려왔다.

‘마셜 계획’은 번영하는 유럽은 더 평화롭게 될 것이며, 주요 교역 상대인 미국을 더 번영하게 만들 것이라는 논리에 따른 것. 그러나 유럽은 좌파들이 장악하면서 미국의 불공정 무역 상대가 되었다. 미국에서 ‘마셜 계획’이란 용어는 주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용이 매우 많이 드는 정부 계획을 비판하는 은유로 사용된다. 특히 보수주의 고립주의자들의 ‘마셜 계획’ 거부감은 크다.

트럼프는 ‘관세’를 가장 좋아하는 단어라 했다. 관세를 활용하여 연방 수입을 늘리고, 미국 내 일자리를 증가시키며 제조업을 되살린다는 계획. 2016년, 24년 대선에서 이를 내세워 승리했다: “오랫동안 미국을 불공정하게 취급한 외국들에 대해 10~2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다. 중국 수입 제품에는 60% 이상의 관세를 고려하고 있다.”

케인즈주의자와 글로벌리즘 자유무역 경제전문가들은 이 방식이 미국인의 비용을 증가시키고 경제성장을 둔화시킬 것이며 세계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런 관세 정책이 무역 전쟁을 일으키거나, 보복 관세로 세계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첫 임기 동안 이런 결과는 발생하지 않았다. 미국 경제는 오히려 더 좋아졌다. 세계경제 역시 마찬가지. 두 번째 임기에서도 트럼프는 관세를 협상 도구로 활용하려 한다.

영국의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세계 자유무역이 대체로 좋은 것이다. 하지만 일부 국가는 ‘잘못된’ 정책을 채택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국내 경제, 제조업, 투자 보호를 위해 관세 형태의 보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대 상황에 대입한다면 중국이 대표 경우.

트럼프는 중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EU, 캐나다, 멕시코 등에 대해 경제와 국가안보 측면에서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한 지렛대를 가지고 있다. 트럼프는 EU와의 무역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미국산 석유·가스를 대규모로 구매하지 않으면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통보했다. 브릭스(BRICS) 국가들이 미국 달러 대체 통화를 개발하려는 시도를 하면 100% 관세를 매기겠다고 경고했다. 캐나다와 멕시코에도 미국으로 가는 불법 이민을 막지 않으면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멕시코와 캐나다는 이미 무릎을 꿇었다.

트럼프 첫 임기 동안 서유럽 등은 그의 요구·기대에 부응하는 데 시간을 끌었다. 그러나 2기에서는 EU 등 오만한 동맹국 엘리트들이 얼마나 빠르게 반응할지 주목된다. 서유럽의 반응 속도는 그들의 경제가 허약할수록 더 빨라질 것이다.

■루트닉은 소득세 대신 대규모 관세 제도를 도입하려는 트럼프 계획을 강력 지지해 왔다. 두 사람 연결고리는 ‘뉴욕’과 ‘이스라엘’. 모두 뉴욕 출신. 트럼프는 친 이스라엘 정책을 폈었다. 루트닉은 이스라엘 정부와 관계 깊은 유대인.

루트닉은 그동안 각종 매체에서 자신의 경제 소신·구상을 밝혔다. 크게 두 가지: “(1)에너지 위기를 고착화된 인플레이션의 핵심 원인으로 보고 에너지 가격을 낮추겠다. (2) EU 관세에 대한 ‘마셜 계획’을 끝내겠다.”

에너지 개발을 늘려 상품 가격을 낮추고, 관세 상호주의를 활용하여 부의 유출을 막는다. 그다음 규제를 제거하고 미국 기업을 자유롭게 한다는 것. 트럼프 ‘메가노믹스(MAGAnomics)’의 바탕이다. 루트닉은 무역 논의·협정에 대한 미국 상공회의소의 영향을 차단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경제정책을) 15명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공개서한으로 비판한 것은 어처구니없다. 골드만삭스 보고서도 엉터리다. 인플레이션을 잡는 유일한 방법은 에너지 가격을 낮추는 것이다. 미국은 사우디보다 원유 생산 능력이 많다. 앞으로 30~40년은 화석연료가 필요하다. 에너지 생산비를 낮춰야 한다.

돈을 풀면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 22년 바이든 정부는 ‘미국구조계획’에 2조 달러나 투입해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다. 세계 어디든 돈을 많이 찍어내지 않으면 인플레이션이 없다.

관세는 놀라운 협상전략 도구다. 모두가 승리하는 방법이다. 간단하다. 우리가 생산하는 수입 물건에는 관세를 매긴다. 그러나 생산하지 않는 물건엔 관세를 매기지 않는다. 미국 자동차들은 유럽·일본에서 100% 관세가 붙는다. 팔 수가 없다. 우리도 벤츠나 포르쉐, 일본 차에 높은 관세를 매기겠다.

1948년 마셜 계획을 시작할 당시 미국 경제 규모는 엄청났다. 40~50년 사이에 독일과 일본은 엄청난 발전을 했다. 이제는 그 계획이 바뀌어야 한다. 중국이 미국을 공격하고 있다. 트럼프가 중국에 200% 관세를 부과할 수도 있다.”

그는 무엇이든 솔직·담백·명확하게 설명했다, 그러나 거칠다 할 정도로 거침없이 반박도 했다. 자신의 삶이 그대로 드러나는 모습이다.

■루트닉은 63세. 삶은 영화 한 편. 그만큼 극적이다. 실제 여러 기록물 영화에도 출연했다.

고교 3년 때 화가·조각가 어머니가 암으로 숨졌다. 이듬해 대학 입학 일주일 만에 역사학 교수 아버지도 암 투병 중 간호사 실수로 세상을 떠났다. 친척 누구도 3남매를 도와주지 않았다. 18세 루트닉은 아버지 빚을 갚기 위해 나섰다. 대학은 그만둘 형편. 다행히 사정을 안 총장이 4년 전액 장학금을 마련해 주었다.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은혜를 갚기 위해 모교에 장학금·도서관 건립 기금 등으로 6,500만 달러(약 1,000억 원)를 기부했다.

2001년 9.11 테러. 마흔 살 루트닉은 매일 수조 달러 규모의 채권 거래를 하는 ‘캔터 피츠제럴드’ 사장이었다. 회사는 뉴욕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 101~105 5개 층을 쓰고 있었다. 공중 납치된 비행기가 충돌한 지점 바로 위.

“월스트리트 쇼는 아침 7시 30분에 시작된다. 회사를 위해 돈 버는 사람은 모두 그 자리에 있었다.” 그날 아침 사무실에 있던 직원은 아무도 생존하지 못했다. 전체 직원 960명 중 658명이 죽었다. 뉴욕에서 희생된 2,753명 중 거의 4분의 1이 루트닉 사람들. 4살 터울 동생도 숨졌다.

루트닉도 그 시간에 사무실에 있어야 했다. 유치원 첫날인 아들을 데려다주느라 살 수 있었다. 기적. 그러나 그 대가를 처절하게 치러야 했다. ‘기적’ 탓에 10여 년간 거의 날마다 울었다. 몽유병에도 시달렸다. 기적을 얻은 것이, 산 것이 죄라면 죄였다.

“입구 계단에 올라서자 유치원 직원이 ‘사무실에서 찾는다. 비행기가 건물에 충돌했다’고 했다. 차에 뛰어올랐다. 근처에 갔을 때 거대한 검은 구름을 봤다. 운전기사가 울기 시작했다. ‘계속 가자. 우리는 그곳에 가야 한다. 무조건 가야 한다’고 말했다.

건물 문 앞에 도착해서 피신하는 사람들을 도왔다. 그 가운데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가 그동안 들어본 중에 가장 큰 소리를 들었다. 두 번째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 달리기 시작했다. 뒤돌아보니 거대한 검은 연기 토네이도가 나를 쫓고 있었다. 차 밑으로 뛰어들었다. 그 검은 연기는 ‘휙’하고 지나갔다.

‘숨 쉬지 마, 숨 쉬지 마’라면서도 깊게 숨을 들이켰다. 모든 그을음, 먼지가 폐 속으로 들어왔다. 내가 바깥에서도 숨 막히는데 안에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 수 있을까?

동생도 그 안에 있었다. 그날 밤, 누나는 동생과 나눈 마지막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동생은 전화로 ‘오, 하나님. 누나가 여기 없어 정말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라고 했다. 회사 변호사인 누나도 출근을 서두르다 몸이 안 좋아 도로 집으로 들어간 터였다.

‘나는 곧 죽을 것이다. 그냥 누나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 안녕.’ 마지막 말이었다. 지금도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운다.

35일 동안 하루에 20번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렇게 직원들을 떠나보냈다. 86명 부서에서 남은 사람은 4명뿐. 하루에 100만 달러 벌던 회사에서 하루에 100만 달러를 잃는 회사로 바뀌었다.

이미 1979년 9월 12일 지옥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친척 모두 우리를 버렸다. 나는 그런 일이 삶에서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결심했다. 내게 중요한 것은 내가 인간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루트닉은 테러 이틀 뒤 ABC 회견 내내 울었다. 동생뿐 아니라 658명을 찾기 위해 여전히 병원들을 뒤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 명단이 있다. 이들을 찾아 아이들을 포옹하도록 만들고 싶다. 동생을 찾고 싶지만 다른 사람의 동생이나 아내·남편도 찾고 싶다.” ABC 앵커는 뉴스에서 ”하워드 루트닉, 이 나라는 당신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은 회사가 문을 닫을 것이라 예상했다. 이 세상 어디에도 한 순간, 한 자리에서 동생 등 658명의 부하를 잃어버린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쟁터에서 조차...그러나 참혹한 비극 속에서도 회사를 살려야 했다.

루트닉은 9월 15일, 658명 직원들 급여 지급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모든 사람을 잃었다. 돈도 다 잃었다." “비정하다”는 논란이 일었다. 유족들도 반발했다.

그러나 그는 가족들에게 앞으로 5년간 회사 전체 수익의 25%를 나눠주고 10년간 건강보험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바로 다음 달부터 약속은 지켜지기 시작했다. 5년간 각 가족에게 돌아간 보상은 17만5000 달러가 넘었다.

루트닉은 전문가들을 고용, ‘9‧11 희생자 보상 기금’의 지원 내용을 분석해 ‘캔터’ 가족들에게 더 많은 돈을 확보해 주었다: “그들이 올바른 금액을 받지 못한다면, 나는 전기오븐에 머리를 넣고 싶을 정도였다. 그게 내 존재 이유였다.”

그는 가족복지재단을 만들었다. 2006년 1억8000만 달러(약 2900억 원)를 재단에 더 기부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 유가족들을 돕고 있다. 가족들은 “정말 멋지게 해주었다. 지나치게 많이 도와주었다”고 한다. 이 밖에 그는 각종 재난재해 희생자 기금 2억8000만 달러도 내놓는 등 많은 자선활동을 한다.

캔터는 채권 시장에서 중요한 존재. 2001년 전체 국채 거래 70% 이상을 처리하고 있었다. 1999년, 루트닉은 미래를 위해 전자거래 자회사를 상장시켰다. 이것이 캔터를 9‧11 이후 다시 살게 한 ‘신의 한 수’였다. 캔터는 비행기 충돌로 새벽에 나온 모든 거래 중개인을 잃었다. 하지만 미국 국채 거래체계인 이스피드(eSpeed)는 중개인이 필요 없었다. 충돌 47시간 후, 채권 시장이 다시 개장하며 캔터도 문을 열었다. 만약 새로운 거래 기술이 없었다면 캔터는 재기할 수 없었다.

거기에다 정부가 적자를 재정 지원하기 위해 더 많은 채권을 발행했다. 채권 시장이 커지면서 캔터는 더 많은 국채를 거래할 수 있었다. 이런 예상치 못한 반전 덕분에 루트닉은 희생자 가족들에게 한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루트닉은 “매년 9월 11일 추모식을 한다. 그리고 12일, 모든 직원에게 그날의 급여를 포기해달라고 요청한다. 모두 스스로 그렇게 한다. 그날 모인 돈은 모두 기부한다. 한해에는 1,200만 달러를 모으기도 했다. 그것은 회사를 하나로 묶어주고, 새로운 직원들에게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우리의 영혼 속에서 무엇이 불타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9‧11은 우리 삶의 일부”라고 말했다.

■루트닉은 지금 맨해튼의 2층에서 일한다. 옛날 세계무역센터의 사무실처럼 103층이 아니다. 658명이나 잃어버린 고통의 크기를 자신 이외에 누가 알 것인가? 자신이 회사를 운영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들이 그 시간, 그곳에서 죽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란 자괴감에 시달렸다. 그 고통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다. 어떤 위로도 소용이 없었다.

그는 오랫동안 거미가 얼굴에 거미줄을 짓는 악몽을 반복해서 꾸었다. 몽유병으로 잠자다 일어나 아내를 옷장으로 밀어 넣기 일쑤였다. 이제 그 나쁜 꿈은 사라졌다. 그러나 2층에 사무실을 둔 것은 103층 테러의 정신과 심리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루트닉의 새 목표는 위성 데이터를 활용한 시장 개척. 자회사 기술을 통해 기후 문제, 에너지 공급, 식량 안보, 공급망 분석에서 혁신을 이루겠다고 한다. 위성 기술이 지구 지도를 매일 다시 그려 좌파의 ‘기후 변화’ 개념을 끝내겠다는 뜻. 좌파의 기후 위기 대신 보수우파의 탄소 시장으로의 방향 전환을 암시했다.

루트닉은 월스트리트 기준으로도 무자비한 경쟁자였다. 골드만삭스, 제이피모간 등에 비해 작은 회사를 키우기 위한 방편으로 그랬을 수 있다. 그러나 9‧11 비극을 겪은 이후에도 금융계의 호감을 두루 얻지는 못했다. 그만큼 강한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서울에도 회사가 있는 그의 글로벌 금융 BGC 그룹은 중국 국영기업과 합작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상무장관으로서 트럼프의 중국 견제 기조와는 다르게 움직일 것이란 의심도 받는다.

유럽이나 중국·일본 등 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루트닉 상무장관은 단호한 상대가 될 것이다. 그의 사업이나 인생 역정에서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영혼이 없는, 융통성 없는 관료 출신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를 배격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칙 등을 존중하는 철저한 보수우파.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의리,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신의를 소중히 여기며 실행해 온 인간이다. 대한민국도 루트닉의 그런 특성들을 알고 논의·협상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가 한국을 어떻게 대할지는 한국이 어떤 이념을 추구하는지, 얼마나 신의를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인지를 인식하는 정도에 달려있다.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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