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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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디터 한성수] 매일 같은 길로 출근한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늘 보던 가게를 지나 회사에 도착한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무엇을 봤더라?
막상 떠오르는 게 별로 없다. 카페가 있던 것 같고, 편의점도 있던 것 같다. 늘 지나던 공사장도 있을 텐데, 막상 떠올리려니 기억이 금세 흐릿해진다. 매일 보는 것일수록 이상하게 더 안 보인다.
그런데 그런 것을 누구보다 집요하게 들여다본 사람이 있다. 조르주 페렉.
손바닥 남짓한 얇은 책을 펼쳤다가 꽤 당황했다. 산문집이라기에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페렉은 좀처럼 이야기를 풀어놓지 않는다. 대신 물건을 세고, 거리를 기록하고, 한 해 동안 먹은 음식을 끝도 없이 적는다. 어떤 대목에서는 ‘이걸 왜 다 적고 있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솔직히 ‘이걸 왜 내가 읽고 있지?’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읽기를 그만둘 수 없다. 더 희한한 건 그다음이다. 며칠 동안 주변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엘리베이터 버튼은 생각보다 많이 닳아 있고, 책상 위 머그잔 손잡이에는 작은 금이 가 있다. 출근길마다 마주치는 화단에는 이름 모를 꽃이 피어 있었다. 어제도 분명 있었을 텐데 오늘 처음 본 것 같았다.
처음엔 오늘 내가 좀 예민한가보다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벽에 붙은 소방 점검 스티커를 읽고 있고, 신호를 기다리며 횡단보도 바닥의 금 간 자국을 바라보고 있다. 편집 일을 오래 하다 보니 활자는 늘 유심히 보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활자가 붙어 있는 사물은 거의 보지 않고 살았다는 사실도 새삼스러웠다.
저자를 흉내 낼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새 나도 쓸데없어 보이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제야 조금 이해했다. 페렉이 기록하려던 건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스스로 지워버린 세계였다는 걸.
그의 말처럼 삶은 ‘스펙터클 한 것을 통해서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은근슬쩍 그가 던진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 우리가 경험하는 것, 나머지인 것, 모든 나머지 것, 그것은 어디에 있을까?
그 질문을 붙잡은 채 페렉은 특별한 사건보다 너무 흔해서 아무도 기록하지 않는 것을 오래 바라본다. 그게 거의 전부다. 작가의 인생을 따라가는 서사도, 웃고 울 만한 사건도 거의 없다. 어떤 사람은 중간쯤에서 책을 덮을지도 모르겠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자꾸 생각난다. 자기계발서도 아닌데 따라해보고 싶어진다는 점도 이상하다. 출근길 간판 하나, 책상 위 머그잔 하나, 늘 쓰던 만년필 하나.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을 괜히 한 번 더 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내 일상을 채우는 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주 조금 달라진다.
“익숙한 것에 대해 질문해 보자.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미 그것에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채 그것과 함께 살아간다. 그것은 더 이상 삶의 조건조차 되지 못하며, 일종의 무감각 상태 같은 것이 된다.” (17쪽)
돌이켜보면 삶은 특별한 사건보다, 대부분 이런 ‘보통 이하의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너무 흔해서 기억하지 않는 것, 너무 익숙해서 보지 않는 것. 어쩌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삶도 바로 그곳에 있는지 모른다.
내일은 출근길을 조금 천천히 걸어볼 생각이다. 페렉은 은근슬쩍 “당신의 거리를 묘사해보라”)고 권했고, 나는 그 꾐에 모르는 척 넘어가 볼 생각이다.
물론 그러다 지각하면 그건 페렉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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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수. 내가 왜 이 일을 택했나 반평생 후회 속에 살았지만, 그래도 어느 동네서점이라도 발견하면 홀린 듯 들어가 종이 냄새 맡으며 좋다고 웃는 책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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