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저희는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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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 엘사가 사는 얼음 궁전 같은 공간일까? <해리 포터> 이야기가 펼쳐진 호그와트 마법학교 같은 공간도 괜찮을 듯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대관령 한복판에 등장한 건 거대한 자취방이었다. 현관문은 목말을 타야 겨우 열 수 있는 크기였고, 냉장고는 3층 침대로 변신했다. 싱크대부터 TV 수납장, 라면 상자까지 모든 물건이 거대했다.
누구나 앤트맨이 되어 버리는 공간이라니. 쉽게 예측하지 못한 아이디어였다. '과연 만화가의 눈이구나!' 감탄했다.
요즘 나는 그런 특별한 눈이 참 부러웠다. 조금 엉뚱해도 창의적인 눈. AI(인공지능)에 물어도 이렇게 기발한 민박집이 나올 것 같진 않았다.
여기에 그동안 쌓아 온 지식과 경험이 가득 더해진다면 어떨까.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뭐가 달라도 다를 듯했다.
<어쩐지 애니에서 과학이 보인다>를 쓴 저자 류상진 교수도 이런 눈을 가졌다. 애니메이션 오타쿠의 눈이자 기계공학자의 눈. 기발한데도 전문적이고, 엉뚱한데도 설득력 있다고 할까.
책에는 저자가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포착해 던진 엉뚱한 질문이 담겼다. 달리는 기차 위에서 꼿꼿이 서 있을 수 있을지, 루피의 고무고무 팔은 얼마나 늘어날지, 원펀맨의 장풍으로 모기를 잡을 수 있을지 같은 질문만 봐도 피식 웃음이 났다.
하지만 그 답변은 사뭇 진지했다. 공학박사인 저자는 실험 사진과 그림을 곁들여 과학 원리를 풀어내고 있다.
사실 나는 목차에 나온 애니메이션 중에 <슬램덩크> 정도만 겨우 아는, 애니 오타쿠력 0인 일반인이다. 게다가 이 책 덕에 기계공학이 '역학에 기반한 공학'임을 알았을 정도로 과학에 무지했다.
이런 나도 책을 쉽게 덮지 못하고 낄낄대며 읽었다. "루피의 고무 몸에 대해 기계공학적으로 썰을 풀려니 내 기분도 고무되는 듯하다!"라는 소위 아재 개그에 웃어 버려서 자존심은 살짝 상했다.
<원피스>를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으로 본 적은 없지만 종종 팔이 쭉 늘어난 루피는 접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자처럼 "루피의 팔은 얼마나 늘어날까?"라는 질문을 떠올려 본 적은 없었다.
저자는 고무란 무엇인가를 시작으로 이 엉뚱한 질문에 답을 찾아갔다. 용수철 인장(잡아당김) 실험을 거쳐 고무줄 늘이기 사고실험으로 '탄성'을 설명했다.
더 나아가 루피의 팔이 고무가 아니거나 매우 특수한 고무일지 모른다는 가설도 세웠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고무 등 고체 물질은 힘을 받는 방향으로 늘어날 때 다른 방향으로는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야 한다. 하지만 루피의 팔은 늘어나기만 할 뿐 두께가 줄어들지 않는다.
애니 속 캐릭터의 늘어나는 팔을 보며 이런 설명까지 이어지다니, 감탄했다. 책을 읽을수록 내가 눈치 못 챘을 뿐 우리 주변 곳곳에 과학이 많이 숨 쉬고 있음을 체감했다. 책에 등장한 애니메이션도 궁금해진 건 덤이었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말했다. <어쩐지 애니에서 과학이 보인다> 덕분에 내게도 과학자의 눈이 조금 생겼을까? 무심코 지나친 장면 속 과학 원리를 떠올려 볼 수 있을까?
적어도 '강한 바람을 만났을 때 몸을 기울이는 행동 속에도 역학이 숨어 있다' 정도만 떠올려도 성공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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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연. 출판업계를 뜰 거라고 해 놓고 책방까지 열었다. 수원에 있지만 홍대로 자주 소환된다. 읽고 쓰는 일을 사랑한다. 인스타그램 담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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