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 칼럼-국제정세의 진실] 아프리카 소국 라이베리아 국민에게서 배워야 할 대통령 선택…12년 걸려 대통령 된 세계 최고 축구선수

편집국 / 2024-10-03 16:08:52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많은 사람들이 정치만 잘하면 대한민국은 걱정할 것이 없다고 한다. 늘 정치인들을 탓한다. 정치에 관심이 있든 없든 우리의 삶의 질과 미래는 물론 나라의 운명도 그들이 결정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을 우리가 뽑았다는 사실을 잘 잊는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그 직업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지 않았다. 우리가 여러모로 따지고 헤아려 뽑은 사람들이다.

정치인들은 권력을 누리고 즐기다 떠나면 그만이다. 역사에 오명이 남는다 하나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권력에 취해 오만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믿고 선택했던 그들의 배반과 실패는 결국 우리의 책임이다. 정치인이 가진 특권과 책임보다 더 중요한 것은 투표를 통해 그를 선택한 우리가 져야 할 책임이다. 투표는 우리의 특권이며 책임이다. 국민이 곧 나라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뼈아픈 선택의 고통을 감당하고 있다. 아무런 정치 경험이 없는 데다 험난한 정치학습 과정을 거치지 않은 대통령을 뽑은 탓. 여당 사람들과 말싸움이나 잘하던 윤석열 대통령의 한 면에만 쏠려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결국 현명한 선택을 하지 못했다.

굳이 정치 선진국을 들먹이는 것은 사치다. 모든 면에서 후진국의 대명사인 아프리카에서도 나라에 따라서는 국민들이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정치 경험을 따진 라이베리아 유권자

라이베리아는 서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1842년 미국에서 해방된 노예들이 건너가 세웠다. 인구는 550만 명가량. 아프리카 최초의 현대 공화국이다. 한국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으나 물자를 지원했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국민소득은 약 700달러.

그런 나라에서 조지 웨아는 프로 축구 선수로는 세계에서 처음 대통령이 되었다. 올해 1월까지 6년 동안.

웨아는 아프리카 축구 역사에서 최고의 선수로 꼽혔다. 이강인 선수의 파리 생제르맹 대선배. 라이베리아를 넘어 아프리카의 우상, 영웅이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기 높은 인물이었다. 수도 몬로비아 최악 빈민가에서 할머니 손에 자란 웨아를 풀뿌리 시민들은 자신들과 동일시했다.

그렇다고 라이베리아 국민들은 웨아를 그냥 대통령으로 뽑아주지 않았다. 유권자들은 그가 정치 경험과 정치를 위한 학식이 모자란다며 믿지 않았다. 대통령이 되는데 10년이 더 걸렸다.

웨아는 10대 때 축구를 시작했다. 그의 인생은 26년 동안 영국의 아스널을 이끌었던 명장 아르센 벵거를 만나면서 영원히 바뀌었다. 21세 웨아를 카메룬에서 발견한 벵거는 그를 모나코에서 뛰게 했다.

웨아는 1992년부터 3년간 파리 생제르맹에서 활약하면서 리그 우승을 세 번 했다. 이탈리아 AC밀란을 거쳐 영국의 첼시와 맨체스터 시티 등에서 뛰었다. 세계 최고 구단들을 섭렵했다. 아프리카 선수로는 유일하게, 축구선수가 받을 수 있는 가장 명예로운 상인 발롱도르와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상도 세 번. 2004년 브라질의 펠레는 웨아를 세계 최고의 생존 축구선수 100인에 뽑았다.

웨아는 2003년 선수 생활을 그만둔 뒤 2005년 라이베리아 대선 출마를 위해 정당을 만들었다. 아무리 널리 알려지고 인기가 있어도 ‘대통령’이 되는 길은 녹록지 않았다.

그는 고교 중퇴자. 국가를 이끌 능력의 장애물로 지적됐다. 정치경험 부족도 마찬가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babe-in-the-woods)”이라 불렸다. ‘Babes in the Wood’는 영국의 전통 동화의 주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위험하거나 적대 상황에 무심코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웨아가 정당을 만들어 2년여 활동했더라도 여전히 정치는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것이다. 2005년 선거에서 실패했다. 젊은 유권자들은 압도적으로 웨아를 지지했으나 약점을 극복할 수 없었다.

웨아는 41세에 고교를 졸업했다. 미국에서 경영학 학사·석사를 마쳤다. 그 뒤 부통령 선거에도 실패했으나 2014년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마침내 2017년 대선에서 이겼다. 축구선수에서 정치인이 되어 대통령에 오르기까지 10여년을 노력해야 했다. 국가 운영을 위한 학식과 정치 경험을 보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재선에 성공하지 못했다. 범죄·마약을 제대로 막지 못했기 때문. 그는 “골을 넣는 것은 쉽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라를 운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도전”이라고 했다.

■잘못된 선택을 통감해야 한다

라이베리아 국민들은 축구 기술과 대통령이 될 자질과 능력을 구분했다. 대중 인기에 휩쓸리지 않았다. 선택의 책임을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그들의 정치 수준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선택과 웨아의 반성은 지구 반대편 한국의 보수우파에 묵직한 교훈을 준다.

아무나, 쉽게 정치인이 되면 경솔하고 무책임한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 쉽게 권력을 쥐었으니 쉬 권력에 취한다. 오만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능력 있는 검사였을지 모르나 능력 있는 정치인은 되기 어렵다. 국가 운영을 위한 학식과 정치 경험을 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보수우파들은 그들을 뽑아주고 밀어주었다. 책임 있는 선택이 아니었다. 선택의 실패였다. “대안이 없었다”라고 한다. 그 기준이 분명하지 않다. 말싸움 능력만을 최고 기준으로 삼았을 뿐 정치·정책 능력과 이념성을 기준으로 따지지 않았다.

일본 자민당의 고이즈미 신지로 의원은 10년간 유력한 총리 후보에 꼽혀 왔다. 15년 의원 경력에 장관까지 지냈다. 그러나 최근 총재 경선에서 3위에 그쳤다. “말은 번지르르할 뿐 내용이 없다. 경제·외교안보 장관이나 당 3역을 한 적이 없어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한국 사람들이 늘 정치 후진국이라 비웃는 일본도 지도자 선택은 까다롭다.

보수우파들은 선택의 엄중한 책임성을 통감해야 한다. 정치인들 탓만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을 뽑아주지 않았으면 정치가, 나라가 이 지경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곧 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또 실패할 것이다.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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