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 칼럼-국제정세의 진실] 한동훈과 고이즈미…한일 두 정치지도자의 문제는 ‘말’이다

편집국 / 2024-08-29 16:29:13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많은 한국 사람들이 “경제는 몰라도 정치는 형편없는 후진국”이라며 일본을 우습게 본다. 과연 그런가? 일본인들이 국가지도자를 뽑는 기준은 한국과 다른 점이 많다. 정치경험·능력과 정책경험·능력에다 말 실력과 말본새까지 까다롭게 따진다. 정치후진국이라 함부로 얘기하기 어렵다. 극심한 인물난으로 고생하는 한국인들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9월 자민당은 새 총재를 뽑는다. 다음 총리가 될 인물. 일본도 한국처럼 선거 때만 되면 변화와 혁신, 세대교체가 단골 주제다. 이번엔 파벌·부패정당이라는 비판 속에 ‘세대교체’가 관심의 첫머리.

그래서 경선에 나서려는 10여명 가운데 고이즈미 신지로(43)와 고바야시 타카유키(49) 두 중의원이 떠오른다. 50세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 그러나 나이로만 세대교체론이 통하지 않는다.

■젊다고 세대교체 기수가 되지 않는다

고이즈미는 의원 15년차다. 미국 컬럼비아 대 석사. 환경대신 등 장관 3번에다 청년국장 등 여러 당직을 거쳤다. 고바야시는 의원 12년차. 하버드 대 석사. 재무성(옛 대장성)과 주미 대사관 근무. 방위대신 정무관과 과학기술정책 특명대신을 지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외교안보·경제 등 중요 부처 장관을 하지 않았다. 간사장 등 당 3역도 거치지 않아 경험이 모자란다. 분열된 당을 아우르고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실정으로 갈팡질팡하고 있는 국정을 추스르기엔 역량이 충분하지 않다”고 한다. 젊으면서 정치·정책능력도 제대로 갖춰야 세대교체 기수가 된다는 것.

“아직 젊은 사람이 그런 경험을 다 할 수 있느냐?”는 반박이 나올 법하다. 그러나 다나카 가쿠에이 전 수상을 겪었던 일본 사람들에게는 마뜩치 않은 모양. 다나카는 29세에 참의원, 39세에 첫 장관. 44세에 초등학교 졸업 학력으로 일본 최고의 인재들이 모인 대장성 장관을 3년이나 지냈다. 뛰어난 능력으로 관료들을 휘어잡았다. 우정성·통상산업성 장관, 자민당 정조회장·간사장을 경험한 끝에 54세에 자민당 총재·총리에 올랐다. 일본인들은 그런 다나카를 떠올리며 “두 사람은 젊지도 않다. 요직 몇 자리는 거쳤어야 마땅하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들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평가. 한국 정치에 비추어 두 사람이 그 정도면 차고 넘치는 정치·정책경험을 했다고 여길 것이다.

일본인들은 오히려 한국 정치를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장관을 하지 않았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정당 근처에 가보지도 않고 선대위원장이 됐다. 대통령이 심복이라고 당의 총선 책임자에 앉힌 것. 어느 나라에도 없는 정치행위다. 잠깐의 그 경력으로 당 대표도 됐다. 장관 했다 하나 법무부는 정책 핵심부처가 아니다.

두 사람은 경제·외교안보와 거리가 먼 평생 수사검사. 정치·정책경험이 없는데도 대통령, 당 대표가 됐다. 정치후진국도 이런 후진국이 없다. “형편없는 정치 후진국”이라는 일본에서도 그렇게 정치지도자를 만들지 않는다. 내각제와 대통령제 차이가 있다 해도 10여년 경력 의원들에게 정치경험이 부족하다, 핵심 장관을 안 했으니 정책경험이 모자란다 하지 않는가.

특히 고이즈미는 안타까운 인물로 꼽힌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아들인 신지로는 아버지 후광으로 일찍 정치를 시작했다. 28세 첫 의원. 반듯한 생김새에다 톡톡 튀는 대중연설로 금방 인기를 모았다. 30대 중반부터 인기 정치인 1위, 총리후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미래의 수상’이란 소리만 들었을 뿐 더 이상 크지 못했다. 지금도 여론조사에서는 선두권이나 여전히 부족한 인물이라 한다.

경험 부족보다 더 큰 문제는 ‘말’. “아직 총리 그릇이 아니다”라는 평을 듣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일본은 정치인의 내용 없는 말, 말다툼질을 싫어한다

정치인은 말을 잘 해야 한다. 현대정치의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입에서 나온다. 정치인의 실력·능력은 말에서 드러난다. 말의 힘이 정치능력이요 통치능력이다.

말 잘하는 것은 말꼬리 물고 늘어지며 말다툼질 잘 하는 것이 아니다. 저잣거리의 이상한 조어나 유행어로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내용 없는 미사여구나 현학적인 말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다. 말의 힘은 분명한 정치철학·정치이념과 정확한 논리, 풍부한 지식·경험에서 나와야 한다. 언어는 쉬우면서도 명쾌, 내용은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찔러야 한다. 무엇보다 정치인의 말에는 명석한 국가장래의 설계, 세계정세의 이해, 경제분석의 통찰력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고이즈미가 말은 그럴 듯하게 할뿐 내용이 없다. 의미가 분명치 않다. 멋을 부리느라 엉뚱한 말이 많다. 같은 말 반복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고이즈미 구문(構文)’이란 달갑지 않은 별명이 따라다닌다. 일본에서 ‘구문’은 ‘아줌마 구문’ 등 세대·성별 등 특정 속성의 특유한 말투를 가리킨다. 조롱에 가깝다.

그는 2019년 환경장관 때 미국에서 “기후변화와 같은 큰 문제는 즐겁고, 쿨하고, 섹시하게 다뤄야 한다”고 말해 일본 안팎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2021년 텔레비전 방송에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를 46%로 올린 것에 대해 "뚜렷한 모습은 아니나 희미하게 떠올랐다. ‘46’'이란 숫자가. 실루엣이 떠올랐다”라고 말했다. 이런 말들을 할 때마다 “도대체 무슨 소리냐? 국가정책을 공부하지 않았다”는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역설이나 ”고이즈미 말버릇은 평화롭고 애교가 있다“는 분위기도 있다. 42세 정치인 이시마루 신지 전 아키타카타 시장 때문. 그는 지난 7월 도쿄도 지사 선거에 출마에 큰 바람을 일으켰다. 하지만 말본새가 워낙 고약해 ‘이시마루 구문’이 생겼다.

은행원이었던 이시마루는 20년 시장에 당선됐다. 시골 시장은 도지사 선거에서 무당파·젊은 층을 끌어들여 2위에 올랐다. ‘세대교체론’을 등에 업고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덕. 금방 큰 정치인이 될 분위기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일본 국민들은 냉정했다.

선거 직후 여론조사에서 “국정진출을 기대한다”는 대답이 겨우 28%. “기대하지 않는다”가 52%나 되었다. 한 순간에 인기가 거품처럼 꺼진 것은 ‘말’ 탓. 그가 하는 말마다 논란·시비가 일었다. 고이즈미처럼 그의 말에도 내용이 없었다. 정치철학과 이념, 정책 등이 없었다. 멋 부리거나 싸움닭처럼 말다툼질이나 하려 했다.

시장 때 의회에서 “졸고 있는 의원이 있다. 부끄러움을 알라”고 호통 쳤다. 도지사 개표 방송에서 심정을 묻자 “도민의 총의가 가시화된 현상일 뿐”이라 했다. “그것이 뭐냐”는 되물음에 “도민이 누구를 지지할지 1표로 나타낸 결과”라고 말했다. 냉소와 역질문의 말본새 때문에 “자존심만 높아 상대보다 우위에 서려는 권위주의의 전형“이라는 비판을 들었다. 누구도 말싸움에 통쾌해 하지 않았다.

한 때 “인터넷 무적함대, 정치 풍운아”였던 이시마루의 정치장래는 먹구름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말다툼질로 당장의 인기는 얻었다. 하지만 폭 넓은 신뢰를 얻지 못했다.

일본이 고이즈미·이시마루의 ‘구문’을 정치인의 중대한 결함으로 보는 것은 한국에 큰 교훈이다. 한국은 윤 대통령을 뽑으면서 말다툼질 잘 하는 재주만 보았다. 문재인 사람들의 말꼬리를 낚아채 싸우는 것을 용기라 보았다. 통쾌해 했다. 똑 같은 일이 여당의 선대위원장, 대표에서 반복됐다. 한 대표 특유의 말꼬리 잡기와 빈정대는 말투를 정치능력으로 오판했다. 이상한 조어나 유행어 사용을 재치 있다고 봤다. 그의 말엔 의미 있는 내용이 없다. 윤 대통령에서 실패하고도 비슷한 말본새를 가진 사람을 당 대표로 만든 것은 치명의 실수다.

국민들은 국가지도자가 되려는 정치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그의 정치잠재력과 현실능력이 드러난다는 것을 깨닫지 않았다. 두 사람의 말 속에 어떤 정치이념이 있는지 잘 따지지 않았다. 국가장래의 설계, 세계정세의 이해, 경제분석의 통찰력이 있는지를 보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세계에 좌우 구분이 없어졌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해도, 한 대표가 좌파논리가 담긴 말을 해도 반박하지 않는다. 그런 두 사람에게 정부·여당의 운영을 맡겼으니 나라가 어디로 가는지 모를 지경에 빠졌다.

일본처럼 왜 우리는 말의 내용과 말본새를 따져 정치지도자를 판단하지 못할까? 정치선진국이 되려면 내용 없는 말다툼질 능력을 정치인의 실력으로 오해하는 분위기가 없어져야 한다.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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