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스트리트북스]모든 것이 허용되지만,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

번역가 조민영 / 2026-09-23 00:05:09
슈퍼리치가 세상을 구한다는 헛소리, 그런데 우리는 왜 그들을 숭배하는가 |저자: 달리아 나미앙 |역자: 조민영 |원더박스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번역가 조민영] 일론 머스크, 도널드 트럼프, 제프 베이조스. 이 이름을 들으면 가장 먼저 어떤 생각이 드는가. 혁신가, 대통령, 사업가보다 어쩌면 '상식을 벗어난 사람'이 떠오를지 모른다.

 

부와 권력을 쥔 자는 늘 존재했지만, 천문학적 자본을 소유한 오늘날 '슈퍼리치'의 성격은 조금 다르다. 한때 부에는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는 최소한의 윤리가 요구되었다. 그러나 요즘은 노골적인 과시와 특권, 눈살 찌푸리게 하는 기행이 혁신가의 자유나 성공을 상징한다.

 

그들은 말 그대로 부를 감추지 않는다. 바다 위에 수천억 원짜리 요트를 띄우고, 개인 섬을 사들이며, 화성 식민지를 꿈꾸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생중계한다.

 

더 놀라운 점은 우리가 이런 선 넘은 일탈을 내심 부러움에 찬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이렇듯 마땅히 비판받아야 할 이 '천박한 슈퍼리치'를 우리는 왜 동경하게 되었을까?

 

캐나다 사회학자 달리아 나미앙은 <슈퍼리치가 세상을 구한다는 헛소리, 그런데 우리는 왜 그들을 숭배하는가>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그 배경에 개인 탐욕을 용인하고 부추기는 사회, 즉 '도발 사회'가 있다고 말한다.

 

"도발 사회는 부자들의 추악한 행동이나 저급한 생활양식을 미화하면서, 거기서 생겨나는 빈곤과 대중의 분노는 철저히 외면하는 사회를 말한다. [...] 이 사회에서 부를 독점하는 것은 이제 공동체 전체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가치가 되었다."(20, 48쪽)

 

이런 사회에서 부의 과시는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과도한 행동은 혁신으로 포장되고 무례함은 오히려 솔직함으로 평가받는다.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자행되는 불평등과 노동 착취, 조세 회피와 환경 파괴는 성공의 부산물쯤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이 책은 단순히 슈퍼리치를 영웅에서 악당으로 뒤집는 대신, 우리가 왜 그들의 화려한 서사에 쉽게 매혹되는지 묻는다. 언젠가는 나도 저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희망,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는 맹신, 거대한 부가 결국 사회 전체를 위해 쓰일 거라는 막연한 기대. 저자는 이런 불투명한 믿음이 모순적 현실을 가리는 신화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중에서도 오늘날 휴가와 여행을 소비하는 방식은 이러한 신화를 좇는 욕망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노동에서 벗어나기 위한 휴가는 또 다른 소비 무대로 둔갑하고, 여행은 재충전 시간이 아니라 소셜미디어에 올릴 이미지를 생산하는 일이 되었다.

 

럭셔리 크루즈를 타고 세계를 누비는 인플루언서는 자유를 앞세우지만, 그들 역시 자기 삶을 끊임없이 상품화하는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모두가 소외를 경험하면서 더 화려한 삶을 선망하는 이 역설은, 도발 사회가 개인 욕망을 어떻게 길들이는지 보여준다.

 

따라서 저자는 슈퍼리치를 향한 욕망의 시선을 거두고 그를 둘러싼 눈부신 서사가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쟁과 기후 재난 같은 인류 위기마저 누군가에게 사업 기회와 부의 원천이 되는 현실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고도 한다.

 

사회를 바꾸는 일은 거창한 구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지금의 현실을 더 이상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눈부신 성공 뒤에 가려진 대가를 외면하지 않는 것. 이 책은 바로 그 감각을 되찾자고 설득한다.

 

 

|조민영. 세 아이가 잠든 밤 홀로 고요히 일하는 시간을 즐긴다.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번역위원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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