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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
그러나 북한은 정보 소통이 철저하게 통제되는 곳. 거기에다 한낱 변방의 외교관이 김정은의 마음속이나 권력 핵심부의 판단을 어떻게 알 것인가? 안다면 더 이상한 일. 그는 트럼프나 외교안보 측근들이 북한을 어떻게 평가하고 상대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지식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보다 훨씬 열려있는 한국에서 이른바 전문가들마저 미국·유럽 좌파언론들의 일방 보도를 믿고 국제정세를 오판하기 일쑤다. “트럼프 탓에 3차 대전이 일어난다” “트럼프가 세계경제를 망친다” “우크라이니 전쟁은 곧 끝날 것이다. 러시아 국민 데모로 푸틴은 사라질 것이다” 등 헤아릴 수 없는 엉터리 주장을 해왔다. 그런 마당에 북한 외교관을 나무랄 수도 없다.
■최근 그 비슷한 상황이 또 일어났다. 취임 직후 트럼프가 북한을 “핵 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처음 언급하며, 김정은과 친한 관계를 강조했다고 비난이 쏟아졌다. 외국 언론이 한국에서 난리가 났다고 보도했다. 트럼프의 발언은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오랜 정책에서 크게 벗어났다는 것. 트럼프 정부가 북한의 완전 비핵화가 아닌 핵 동결이나 제한에 초점을 맞춘 ‘거래’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다.
참으로 황당한 반응이 아닐 수 없다. 트럼프가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부른 것은 전혀 새삼스러운 것도, 문제도 아니다. 그는 친하다고 김정은을 봐주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대로 요리해 왔다. 미국의 오랜 정책에서 벗어나야 제대로 북한을 다룰 수 있다. 트럼프 정부는 북한 완전 비핵화를 계속 추진해 왔고, 앞으로 그럴 것이다. 트럼프에게 북한 핵은 절대 그대로 둘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도무지 터무니없는 소리에 한국의 ‘트럼프 증오자’들은 더 흥분할 것이다. 적지 않은 국민은 불안할 것이다.
■왜 비난 반응은 말도 되지 않는가?
지난해 12월 트럼프는 플로리다 마라라고 사저의 행사에서 정치평론가 글렌 벡과 만나 “핵 확산이 우리가 직면할 가장 큰 문제다. 핵무기가 지금 시장에 나와 있다. 북한은 핵을 보유하고 있으나 팔았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시장에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12월 9일 칼럼 “김정은의 북한은 생명 존중이 전혀 없는 피비린내 나는 나라. 핵무기를 팔려 한다”-트럼프의 냉정한 북한 평가).
벡은 ‘폭스 뉴스’ ‘CNN’ 등에서 정치 대담 사회자로 유명했다. 그는 자신의 팟 캐스트에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미국의 어떤 매체도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넘어서 팔려 한다는 판단까지 하고 있다. 그 정도로 위험한 국가임을 인식하고 있다. 그런 북한을 “핵 보유국” “핵 세력”이라 불렀다고 비난하는 것은 국제정세를 몰라도 너무 모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북한 군대는 김정은이 전쟁에 나가라면 나가고 싸우다 죽는다. 세계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나라”라며 북한의 참혹한 현실을 설명했다. 북한을 정상 국가가 아닌 광기 서린 종교 집단으로 보았다.
그의 말은 새 정부의 북한 정책 방향·내용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다. 미국이 북한을 상당히 가혹하게 다룰 것을 추정케 한다. 트럼프는 머지않아 유가를 내려 이란을 압박하려 한다. 조 바이든 정부가 원유 가격을 올려 이란을 도왔기 때문. 이란 핵을 없애는 방안의 하나다. 그 연장선에서 트럼프는 핵 폐기를 위해 북한에 대해 ‘최대한 제재 압박’ 정책을 펼 것으로 보인다. 이란 핵을 절멸시키려 하는 마당에 북한 핵으로 외교 놀이를 할 이유가 없다.
더욱이 트럼프는 북한에 대한 굴복이나 다름없는 민주당 정권의 북핵 정책을 강력히 비판해 왔다. 버락 오바마의 안보보좌관이었으며 바이든 백악관 최고 실세였던 수잔 라이스는 2017년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 핵을 수용하고 평양에 대한 강경 발언을 삼가라고 요구했다. 그런 노선에 따라 바이든 정부는 대북 제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북한에 북핵 해결을 위한 특사를 보낸 적도 없다. 북한이 마구 미사일을 쏘아 댄 것은 그 탓.
한국에서 바이든 정부가 제대로 북핵 정책을 폈으며, 트럼프가 그것에서 벗어났다고 하는 것은 바이든의 실체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부터 행정명령을 통해 바이든의 좌파 정책들을 모조리 뒤집고 있다. 그가 바이든의 대북정책에서 벗어나야 정상이다.
■트럼프는 수석 외교안보부보좌관에 알랙스 웡 전 국무부 북한 담당 부차관보·북한 문제 부특사를 기용했다. 웡은 트럼프와 김정은의 싱가포르·하노이 회담 실무 협상자. 앞으로 북한 관련, 한국이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이다.
웡이 세미나 등에서 밝힌 북한과의 협상 과정이나 협상 원칙은 “북한이 완전히 핵을 폐기하지 않는 한 어떤 지원도 없다”는 것. 비핵화가 트럼프 정부의 절대 목표다. 적당한 타협으로 북한 핵을 거저 묶어두려 한다거나, 김정은에 끌려다닌다는 국내외에서의 주장과는 전혀 반대다.
웡은 “일부는 비핵화가 ‘비현실적 꿈’이라 주장한다. 북한이 일정 수준의 핵 능력을 유지하도록 허용하면서도 이를 축소 또는 동결하고, 일부 제재를 완화하는 방향을 제안한다. 하지만 이는 북한 핵을 허용할 뿐만 아니라 제재만 완화하고 핵 개발 정당화를 가져온다”며 바이든 정부에 경고했다.
그는 “(싱가포르·하노이) 협상에서 북한 대표들은 권한이 별로 없었다. 그들 임무는 본질 문제인 비핵화를 향한 구체 단계를 논의하지 않도록 피하고 시간을 끄는 것이었다. 핵무기는 북한에게 칼도 방패도 아니다. 목에 걸린 무거운 짐일 뿐. 북한경제의 강화를 위해 북한의 완전 비핵화와 한반도 영구 평화체제가 수반되어야 한다. 이와 다르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오도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트럼프가 핵 축소 또는 동결을 원하는 줄 안다. 트럼프가 마치 김정은에게 끌려간 줄만 안다. 그냥 인기만을 노린 정치 쇼나 한 거로 생각한다. 트럼프가 하는 일이면 뭐든지 부정 시각에서 보는 세계 좌파 매체들을 그대로 믿는 탓이다.
그러나 웡은 증언했다: “하노이 협상에서 북한은 제재를 완전히 해제해 달라고 했다. 그 대신 영변 시설을 대가로 내놓았다. 우리는 ‘안 된다’고 했다. 트럼프에게 전달됐던 제안의 핵심은 간단했다. ‘영변이 북한 핵과 대량살상무기 계획의 중요 부분인 건 맞다. 하지만 전체에는 조금도 근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내민 얄팍한 카드를 비핵화가 목표인 트럼프 측은 가차 없이 거절했다. 김정은의 어설픈 술책은 통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핵 폐기 확답을 안 하자 바로 회담을 중단하고 빈손으로 돌려 보냈다. 이러한 상황을 많은 한국인들이 거꾸로 알고 있다.
제이디 밴스 부통령은 대선 유세 때 트럼프가 살찐 김정은을 에둘러 비꼬는 장면을 소개한 적이 있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데리고 논다는 뜻. 트럼프가 “김정은과 친하다”고 하는 것은 적대국가의 푸틴이나 시진핑, 자신을 8년 동안 괴롭혔던 정적 오바마와 “좋은 사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거저 외교 수사일 뿐.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지금 한국이 핵 보유국 발언을 두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취임식 날 저녁 트럼프가 주한미군 사령관 등과 영상 통화한 뜻을 깊이 헤아려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가 ‘총사령관 취임 무도회’에서 미군이 주둔한 많은 나라 가운데 오로지 한국을 선택한 의미는 무엇인가?
대화를 들어보자: “그곳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김정은은 어떻게 지내나요?
제8군 사령관 크리스 중장, 주임원사 로빈 볼머입니다...대통령께서 한국에 다시 방문하신다면 이곳 병사들의 모습, 전투 준비 태세, 한국과 본토 방어에 대한 철통같은 헌신을 직접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지금 한국 상황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는 꽤나 좋지 않은 의도를 가진 상대가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나와는 꽤 좋은 관계를 쌓았지만...한국에 계신 분들께 안부 전해주세요. 한국에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 매체 ‘포브스’가 공개한 영상에 대한 반응은 핵 보유국 발언으로 트럼프를 비난하는 것과는 상반되었다. 한국인과 재미교포 등이 한글 또는 영어로 쓴 것, 미국인이 쓴 것 등 많은 댓글이 달렸다. 누구도 트럼프를 욕하지 않았다. 오히려 트럼프가 주한미군과 통화한 의도를 깊게 헤아리면서 그에게 “한국을 도와 달라”고 했다.
“새롭고 중요한 일이다. 트럼프가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어떻게 다루는지 지켜보는 게 흥미롭다.”
“한국 대통령이 어려운 상황인데 북한이 도발 못 하도록 항상 경계하는지 점검하는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님! 제발 대한민국을 지켜주십시오. 매우 위험한 상황입니다. 너무 많은 공산주의자들이 활개 치고 있습니다. 4만 명의 미군 희생으로 우리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 자유를 다시 공산주의자들이 뺏으려고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께선 미국과 혈맹인 대한민국을 도와주십시오.”
“진짜 그냥 정말 멋지네.”
“트럼프는 주한미군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부당한 탄핵 및 수사 과정 속에서도 강력하고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는지를 확인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님 정말 감사합니다. 한국에 대해 신경 써주시다니요!”
“트럼프 대통령님, 이 영상을 보며 한국에서 우리가 얼마나 편안한지 아시나요? 사막에서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이야말로 대통령입니다!”
왜 이런 간절한 목소리가 트럼프를 향해 나오는가? 가짜, 왜곡·조작된 뉴스를 믿고 국제정세를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국가안보를 해치는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오해와 억측이 계속되는 한 대한민국의 장래는 어두울 뿐이다.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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