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 칼럼-국제정세의 진실] 하버드에 하마스 폭탄이...

편집국 / 2023-10-26 18:12:32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미국의 대학들에서 이념 갈등은 도를 넘어선지 오래다. 물론 좌파들의 영향력이 보수우파를 압도한다.


과학조차도 이념 정치에 지배될 정도다. 좌파들의 과학만 과학이다. 보수우파들의 과학은 음모다. 기후변화를 반박하거나 코로나 백신의 효능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은 좌파 교수와 학생들의 공격에 견디지 못한다. 학교를 그만두기도 한다.

보수주의 학생들은 신상 털기와 폭행을 당한다. 살해 협박까지 받는다. 2021년 네브라스카 대 교수는 보수주의 단체에 속한 학생들의 신상을 밝혔다. 그리곤 그들은 테러리스트들에 돈을 대는 조직을 지지한다고 공격했다. 회사들이 신입 사원을 모집할 때 그 학생들의 이름을 참고하라고 떠들었다.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학생들 앞길 막기에 나선 것이다.

■ 하버드 학생들의 반 이스라엘 성명

그런 분위기의 미국 대학에서 무슬림은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대상이 된지 오래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탄압한다는 이스라엘은 증오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무슬림을 비판하거나, 반대로 이스라엘을 편 들면 상당한 보복을 각오해야 한다. 하마스 공격 이후 반 이스라엘 시위가 대학들을 휩쓰는 것은 좌파 이념이 지배해 온 탓이다.

오만한 좌파이념은 교수든 학생이든 거칠 것 없게 만들었다. 그 막무가내가 결국 자신들의 발등을 찍고 말았다. 하버드 대학에서. 1만 km 넘게 떨어진 곳에서 날아 온 ‘하마스 폭탄’이 터졌기 때문이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은 그냥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 20년 동안 가자의 수백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개방형 감옥에서 살아야 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지옥의 문을 열겠다’고 공언했다. 가자 학살은 이미 시작되었다...하버드 공동체에 호소한다. 계속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몰살을 막기 위해 행동을 취할 것을 촉구한다.”

하버드 대의 33개 학생 단체가 ‘하버드 팔레스타인 연대 집단’이란 이름 아래 발표한 성명이다. 학생들은 이스라엘을 “인종격리 정권”이라 불렀다. 공습이 일어난 책임은 오로지 이스라엘이 져야 한다고 했다. 하마스의 무자비한 공격에 대한 어떤 비판도 하지 않았다. 사실과 전혀 다른, 걸러지지 않은 극언뿐이었다.

학생들은 늘 그래 왔듯이 의기양양했을 것이다. 하버드의 목소리다. 누가 우리를 건드릴 것인가?

■ “하버드는 북한의 수용소”

그랬다면 대단한 착각이었다. 사방에서 강력한 비판이 쏟아졌다. 그야말로 폭탄이었다. 선배 등 기업인들이 “성명에 서명한 학생들의 신상을 공개하라”고 학교에 요구했다. 그들을 회사에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학생들만큼이나 무책임한 총장을 비판했다. 고용 거부는 물론 “하버드에 기부를 중단하겠다. 관계를 끊겠다는” 유명 인사들이 줄을 이었다. 성명이 하버드에서 나온 만큼 미국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다.

유명 코미디언이며 정치평론가인 빌 마허는 “무식이 병이라면 하버드는 (중국의) 우한 수산시장”이라고 뼈아픈 풍자를 했다. 무식 병의 발상지가 하버드란 것이다. 좌파인 그 조차 학생들의 성명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이비리그 코넬대를 나온 그는 “젊은이들에게 대학을 가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다”며 “아이비리그 대학들도 북한의 재교육 수용소와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엉망”이라고 미국 대학들의 참담한 현실을 비판했다.

학생들은 전혀 예상 밖의 격한 반응에 놀랐는지 금방 꼬리를 내렸다. 온라인에서 성명과 서명 단체 목록을 지워버렸다. 변명하거나 숨기에 바빴다. 단체의 한 간부는 “서명하기 전에 성명을 읽지 않았다”고 둘러댄 뒤 탈퇴했다. 여러 학생들이 “잘 몰랐다. 후회한다”며 뒤를 이었다. 비겁하지만 일단 도망가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인가? 일자리 잃는 것이 어떤 것보다 더 두려웠던 모양이다. 오만한 엘리트들이 한 순간에 연약한 소시민으로 전락했다.

파문은 쉬 가라앉지 않았다. 언론감시 단체인 ‘미디어의 정확성’은 서명 학생들의 이름과 얼굴사진을 내보내는 전광판 트럭 시위를 하버드 캠퍼스 일대를 돌며 벌였다. 트럭은 “하버드의 반 유대인 주도자들”이란 제목을 내걸었다.

전 하버드 대 총장이며 빌 클린턴 정부의 재무장관이었던 로렌스 서머스는 “많은 학생들이 그 성명을 보지 않고 서명만 했을 뿐이다. 신상 노출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하버드 법대 명예교수인 앨런 드쇼비츠는 “공소장을 읽지 않고 서명한 변호사를 누가 고용하겠는가?”며 “제대로 읽지 않고 서명했다는 것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런 학생들은 변호사가 될 자격조차 없다는 것이다.

성명 발표 직후 가장 먼저 비판에 나선 동문 기업인은 “다수의 기업 대표들이 나의 모교가 학생들의 신원을 밝힐 것인지를 물어왔다. 무심코 라도 그 학생들을 고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행위를 옹호하는 학생들은 기업의 보호막 아래 숨을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회사의 대표는 “결코 고용하지 않을 것이다. 테러 지지자에 대한 차별은 내가 내릴, 우스꽝스럽게도 가장 쉬운 결정 중 하나”라고 냉소했다.

유명 법무법인은 하버드와 컬럼비아 법대 학생 3명을 고용키로 했다가 서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취소했다. 연방법원 판사는 “성명에 참여한 어떤 학생도 나의 재판 연구관으로 받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해운업과 스포츠 산업으로 140억 달러 재산을 가진 이스라엘의 이단 오퍼는 부인과 함께 하버드 케네디 스쿨 이사를 사임했다. “학생들의 성명을 비판하지 않은 총장의 충격적이고 둔감한 대응에 항의”라고 했다. 래리 호간 전 메릴랜드 주지사도 비슷한 이유를 들며 케네니 스쿨의 펠로쉽 프로그램 참여를 거둬들였다.

유대인 관련 자선단체인 웩스너 재단은 지난 30년 동안 5,600만 달러(730억 원 가량)를 하버드에 기부했다. 그러나 절연을 선언했다. 재단은 “놀랍고 역겹다“며 “하버드가 이스라엘 국민들이 학살을 당하는 것에 대한 명확하고 모순 없는 입장을 취하지 않은 것은 충격”이라고 밝혔다.

‘하마스 폭탄’이 학생들에게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교훈을 준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나 학생들이 교훈을 실천할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미국의 대학들이 좌파 이념 병에 너무 깊게 걸려 있기 때문이다.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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