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 칼럼-국제정세의 진실] 포푤리즘은 ‘민족 보수주의’다…좌파 대중인기영합주의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편집국 / 2024-11-28 18:47:46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민족 보수주의, 첫 번째 대승을 거두다.”

“도널드 트럼프 압승으로부터 보수당이 배워야 할 교훈: 애국주의에는 어떤 잘못도 없다.” “미국선거의 진짜 교훈은? 포퓰리즘은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

미국 선거 전후 영국의 보수신문 ‘텔레그래프’의 기사들이다. ‘민족 보수주의’가 승리의 원동력. 그것이 바로 포퓰리즘이라는 설명이다.

많은 한국인들은 매우 의아할 것이다. “좌파들의 포퓰리즘에서 배우라니?” 포퓰리즘을 국민 인기만을 노려 마구 퍼주기 식 좌파 선심정책을 ‘대중인기영합주의’로 알고 있기 때문. 지난 대선 때 더불어민주당 후보 이재명을 포퓰리스트라 불렀다. 남미의 경제실패도 포퓰리즘 탓이라고 한다. 미국매체들이 트럼프를 포퓰리스트로 부르니 마구 그를 비난했다.

그러나 포퓰리즘은 대중인기영합주의가 전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못 알려진, 가장 오해되고 있는 정치용어다. 세계 어디에서도 그렇게 쓰이지 않는다.

‘텔레그래프’의 글들을 보자.

“트럼프의 일방 승리는 많은 것을 바꿀 것이다. 냉전 이후 정책 방향—세계화·국제기구·서비스와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은 한계에 왔다. 서구에서 가장 활발하고 성장하는 운동은 ‘민족 보수주의’다. 국가의 국경·정체성·문화·역사와 자국민의 번영 등을 강조한다. 유럽연합(EU)은 그 세력을 변방에 머물게 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트럼프 승리에서 보듯 민족 보수주의는 서구 주요 국가에서 결정적 지지를 얻었다. 이 이념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마가렛 대처 수상의 정치에서 핵심 요소였다. 보수주의의 본질. 영국 보수주의자들은 이 새로운 운동에 편승해야 한다.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이다.“

■영국 신문은 좌파 노동당에 이길 수 있는 길이 민족 보수주의요 포퓰리즘이라 했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그것이 좌파 ‘대중인기영합주의’가 된지는 과문 탓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현실정치에서 ‘포퓰리즘’이 생성된 기원·역사를 제대로 살피지 않고 단어 그 자체만을 따졌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할 뿐. 그것을 정확하게 영어로 옮길 수도 없다.

‘포퓰러(Popular)’에는 ‘대중’과 ‘인기’라는 두 뜻이 있다. 동서고금 어떤 정치체제도 백성이나 대중의 인기, 즉 민심을 얻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그래서 포퓰리즘을 거저 대중의 인기만을 노리는 이념으로 해석했을 수 있다. 그러나 ‘포퓰러’가 ‘포퓰리즘’으로 바뀌면 불순한 인상을 주는 ‘대중인기영합주의’가 아닌 전혀 다른 뜻의, 깊은 역사성과 이론을 가진 정치이념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포퓰리즘을 대중인기영합주의로 아는 것은 지식사회뿐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세계정치의 흐름을 거꾸로 알게 되면서 외교·안보·경제 등에서 큰 실수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미국인들은 최근 세계 보수주의 정치인들을 꼽으면서 윤석열 대통령을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런 윤 대통령이 공개 자리에서 포퓰리즘을 비판했었다. 그가 국제정치 무대에서도 그렇게 발언한다면 본인은 물론 한국도 보수주의로 인식되지 않는다.

만약 그가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에서 포퓰리즘을 비판하면 “나는 좌파”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념이 같은 사람으로 비친다. 치열한 이념전쟁을 하고 있는 트럼프로서는 한국을 동맹국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그는 2017년 한국을 첫 방문했을 때 주한미군을 몰아내려는 김정은을 칭찬하는 문 정권에 큰 충격을 받았었다.

■포퓰리즘의 본질은 ‘엘리트를 위한 정치’와 구분되는 ‘보통사람들을 위한 정치’다. 의원·관료집단·법조계·금융권·정보기관·대기업 언론 등 ‘기득권 세력’과 ‘검은 정부’만을 위한 정치가 아닌 국민을 위한 정치, 국민에게 더 많은 권력이 주어지는 정치를 추구한다.

포퓰리즘은 1800년 대 후반 미국에서 처음 정치에 등장했다. 1890년 노동자·농민이 중심이 된 ‘국민의 당’이 생기면서 절정을 이뤘다. 소수 엘리트 집단과 부자들만을 위하는 “큰 정부”와 “중앙 집중화”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보수주의와 마르크스주의·사회주의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은 정부의 역할. 보수주의는 경제에 대한 정부 규제를 반대하나 사회문제 규제는 찬성한다. 마르크스주의는 거꾸로다. 경제는 정부가 통제·장악하되 동성애·마약·낙태 등 사회 문제는 건드리지 말라고 강조한다.

포퓰리스트들은 자본주의 체제가 본질은 착한데도 왜곡·오용되어 절대 다수인 보통국민들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현실을 정부가 고쳐달라고 했다. 1890년대는 철도회사·은행 등, 1960~70년대는 다국적 기업 등과 그에 엮인 정치인들이 규제돼야 시장경제가 정상으로 움직인다고 주장했다.

포퓰리스트들은 자본주의를 반대하지 않았다. 개인주의·기회 평등·개인 재산권 인정 등 고전자유주의 사상을 다 받아들였다. 자본주의 파괴가 목표인 마르크스주의 좌파들과는 다른 인식·이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정치학에서는 “정부 규제를 찬성한다”는 이유로 이들을 일종의 좌파로 분류했다.

마르크스주의는 변하지 않으나 포퓰리즘은 시대에 따라 변해 왔다. 1980년대 보수주의 레이건 전 대통령이 포퓰리스트들을 포용했다. 보수주의 포푤리스트들은 포푤리즘의 색깔을 바꿨다. 정부 규제 완화, 정부의 통화 조작을 없애는 금본위 제도를 지지했다. 큰 정부 붕괴를 추구했다. 레이건 이후 포퓰리즘은 완전한 보수주의 이념으로 거듭났다.

보수주의 포퓰리즘은 작은 정부와 시장경제를 추구한다. 국가주권·애국심·법과 질서·이민제한·전체주의·기득권 반대를 강조한다. 종교·문화·민족과 관련된 전통가치를 중시한다.

■포퓰리즘은 왜 ‘민족 보수주의’로 불리는가? 세계를 ‘하나의 정부’로 통합하기 위해 세계화(Globalization)를 앞세우는 좌파들에 맞서 개별국가의 주권과 정체성·문화·전통·종교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보통국민들의 민족 자긍심·애국심을 글로벌리스들의 침공으로부터 지키기 때문이다. 좌파들은 ‘글로벌리즘’을 내걸고 개별국가와 그 국민들이 가지는 특성을 부정한다. ‘미국외교협회’와 다보스 포럼을 운영하는 ‘세계경제포럼’ 등이 주요 본산이다.

교통·디지털 통신 등의 발전은 수천 년 동안 존재해온 지리 경계를 축소시키고 없앴다. 세계는 작아졌다. 대신 국가 간 상호작용·교류는 전례 없이 커졌다. 이러한 글로벌 협력, 세계화는 자연스러운 역사 과정의 결과다.

그러나 다른 형태의 세계화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공산주의 혁명을 위한 시도다. 그 혁명은 반드시 글로벌 운동이어야 한다는 것. 레닌의 국제공산당 목표는 세계소비에트공화국 수립이었다. 스탈린의 세계혁명 목표는 전 세계 자본주의 세력을 파괴하고 모든 국가를 단일한 세계경제 체제로 통합하는 것이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글로벌 시민’ ‘세계화’를 내세우며 인류를 ‘하나의 세계정부’ 아래 통합하기 위해 나섰다. 그러나 그 목표의 가장 큰 걸림돌이 개별국가들의 애국주의·민족주의·국가주권이었다. 이에 대한 전쟁을 벌였다. 무기는 국경개방, 난민수용 등 대량이민, 전쟁개입, 해외원조, 각종 국제기구, 자유무역협정, 개인·집단을 철저하게 통제·장악하는 큰 정부 등이었다.

이들은 문화 경계와 국경이 없는 ‘이상 낙원’ 건설을 한다며 유엔, 유럽연합,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 파리기후협약,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각종 군축조약 등을 만들었다. 이런 기구·조약들은 각국 주권을 서서히 침식시켜 모든 나라들이 복잡한 국제 망에 통합되도록 했다. 가령 미터법과 같은 공통 단위체계·시간대·경제통합 형태는 전 세계에서 활용된다. 이 체제에서 벗어남은 결코 해서는 안 되는 해로운 일로 몰아갔다.

중동 난민 등을 전혀 다른 가치관·전통을 가진 나라로 옮겨가게 해 혼란·충돌을 일으켰다. 국가만의 자긍심·문화·전통·종교를 약화시켰다. 보수기독교인들은 글로벌리스트들의 세계정부 건설을 신에 대한 반역이라고 본다.

글로벌리스트들과 좌파매체들은 애국주의·민족주의·국가주권을 ‘인종차별주의’ ‘외국인 혐오증’ ‘파시즘’ ‘제국주의’ ‘권위주의’ ‘백인우월주의’로 몰아세웠다. ‘열린사회 재단’을 만들어 세계 좌파 조직·개인을 지원하는 조지 소로스는 “국가주권은 국제법·국제기구에 종속돼야 한다. 주권은 흘러간 시대에 뿌리를 둔 시대착오 개념,” 독일 마르크스주의자 테어도어 아도르노는 “애국심은 병리 현상”이라 했다. 사회주의자인 물리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세계정부’를 주장하며 “민족주의는 젖 비린내가 난다”고 했다.

그런 공격 때문에 포퓰리스트들은 ‘민족 보수주의’ 대신 포퓰리즘을 주로 사용한다. 좌파들의 선전 공작에 의한 보통국민들의 오해와 공포를 막기 위해서다.

■현재 세계에서 좌우의 가장 심각한 대결은 이민정책이다. ‘포퓰리즘 대 글로벌리즘’의 전쟁을 상징한다.

포퓰리스트들은 불법이민(난민 포함) 수용을 민족국가를 부정하려는 좌파전략이며 보통국민들에 대한 문화·경제 위협으로 본다. 국경·국가주권을 지키며 문화 정체성·동질성을 보존하고 경제 고통과 범죄를 줄이기 위해 반대한다.

불법이민 대거 유입은 사회구조를 파괴한다. 범죄가 는다. 낮아진 임금으로 노동시장이 붕괴된다. 중하층 노동자들 삶이 침해되며 중산층이 무너진다고 믿는다.

그러나 미국·유럽의 글로벌리스트들의 목표는 국경을 없애 난민·불법이민을 적극 수용하는 것. 무슬림 난민을 대거 유럽으로 보내 기독교 가치를 무너트린 뒤 정치·경제·문화·종교의 다양성을 이룩해 세계 일국체제를 만들기 위해서다. 이민에 따른 값싼 노동력은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미국 민주당·유럽 사회민주당 등은 불법이민자들에게 선거권을 주어 절대 지지 세력으로 만들면 어떤 선거든 필승이며 영구 집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조 바이든 정부가 4년 동안 국경을 사실상 개방해 1천만 이상의 불법이민을 허용한 것도 그 때문. 트럼프가 취임 직후 그들을 추방하겠다는 것은 그것을 막기 위한 이유도 있다.

■세계의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은 트럼프 이외에 빅토르 오반 헝가리 수상,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헤이르트 빌더러스 네덜란드 여당 대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 자이르 보이소나루 전 브라질 대통령, 장 마리 르팽 프랑스 전 대통령 후보 등이다. 이들은 세계의 좌파매체들로부터 무조건 극우·권위주의자·독재자로 몰린다. 온갖 험악한 욕을 먹는다.

포퓰리스트 정치지도자는 많지 않다. 그러나 “스웨덴·독일·루마니아·오스트리아·스페인 등 여러 나라에서 포퓰리즘 정당이 대세가 되고 있다. 세계 민주주의의 주도권은 글로벌리스트들이 아니라 민족 보수주의자들에게 있다.”

오래 전 글로벌리스트들이 에르도안 튀르키에 대통령, 차베스 베넬수엘라 대통령 등을 러시아와 외교를 한다며 포퓰리스트로 불렀었다. 포푤리즘 본질과는 전혀 상관없다. 세력이 커지는 포퓰리즘을 파시즘으로 몰려고 독재자 에르도간과 차베즈 등을 그렇게 부른 것. 그들이 포퓰리스트면 다른 포퓰리즘 정치인들도 독재자 인상을 가질 수 있다. 언어조작으로 타도 대상에게 나쁜 인상을 덧칠하는 좌파들의 전형 수법이다.

포푤리즘은 복잡한 정치용어. 그러나 국제정세 이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이념이다. 모르면 국제정치를 바로 볼 수 없다. 세계에서 낙오된다. 이미 한국은 그 상태다.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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