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56왕과 태극기가 무슨 상관이냐…대형 태극기 게양대 설치 중단하라”
경주환경련, “태극기 게양대는 김유신 장군 동상에 어울리지 않는 시설물”
지역 문화계도 “천년의 신라 역사는 간 곳 없고 태극기만 부각될 것” 비판
최혜진 기자
chj@newsbalance.co.kr | 2024-07-22 05: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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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제는 “‘애국심 함양’ vs ‘혈세 낭비’…경주에서도 대형 태극기 게양대 설치 논란”입니다. 경주시 황성공원 내 김유신 장군 동상 앞 대형 태극기 게양대 설치 논란을 둘러싸고 경주시와 경주환경운동연합의 찬반 입장을 취재했습니다. <편집자 주>
경주시는 지난해 예산 7억 원을 들여 황성공원에 신라를 다스린 56 왕을 상징한다며 56m 높이의 대형 태극기 게양대 설치를 추진하면서 시민들의 찬반 논란에 직면한 바 있다.
21일 경주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경주시는 당초 지난해 말 초대형 게양대 공사를 시작해 올해 3.1절에 준공을 하려 했으나, 시민들의 여론이 나빠지자 공사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예산 규모와 장소를 조정하여 지난 6월 10일 공사에 착수했다. 계획대로 공사가 진행되면 올해 8월 15일에 맞춰 준공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경주환경련은 지난 10일 ‘경주시의 대형 태극기 게양대 공사를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경주환경련은 성명을 통해 “(경주시가) 시민 여론을 의식해서 눈치 보며 차일피일 미루던 게양대 공사의 명분을 어떻게 확보해서 착공했는지 궁금하다”면서 “그냥 민의를 저버리고 막무가내 불통 행정을 하기로 작정한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설마 올해 초 관변단체와 이통장을 동원하여 실시한 구글 설문조사가 경주시 행정의 근거가 되지는 않았기를 바란다”고 했다.
경주환경련은 “경주시가 예산을 약 7억 원에서 3억 원으로 축소하고, 게양대 높이를 56미터에서 30미터로 낮추어 황성공원 중앙이 아닌 가장자리인 김유신 장군 동상 앞에 설치하는 것으로 시민들의 비판 여론을 피하려는 듯하다”면서 “그러나 사업을 축소한다고 해서 본질이 바뀌지는 않고 여전히 대형 태극기 게양대는 황성공원에 어울리지 않는 불필요한 시설물”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설마 올해 초 관변단체와 이통장을 동원하여 실시한 구글 설문조사가 경주시 행정의 근거가 되지는 않았기를 바란다”면서 “사업을 축소한다고 해서 본질이 바뀌지는 않고 여전히 대형 태극기 게양대는 황성공원에 어울리지 않는 불필요한 시설물”이라고 덧붙였다.
대형 태극기 게양대는 황성공원 경관과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신라시대부터 자연 숲으로 관리되어 온 임수(林數)의 역사적 가치와도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경주환경련은 “경주시의 이번 결정은 시민들의 애국심을 높이기는커녕 두고두고 비판의 대상이 될 것”이라며 “시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추진한 이번 공사에 대해 깊은 절망을 느낀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경주시는 지금이라도 공사를 중단하고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면서 “경주시가 천년고도 경주의 품격에 어울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촉구했다.
한 매체에 따르면 지역 문화계의 한 인사도 “김유신 장군 동상의 높이가 20미터 정도 되는 만큼 (태극기 게양대) 30미터를 합치면 56미터 정도 될 것”이며 “그러면 삼국 통일의 공신인 김유신 장군을 기리는 동상은 규모 면에서 뒷전이며, 경주 남산 등 시내 전역에서 바라보면 천년의 신라의 역사는 간 곳 없고 태극기만 부각 될 것이다. 적절치 않다.”고 비판했다.
앞서 경주지역 10여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해 12월 30일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주시는 황성공원 초대형 태극기 게양대 건립을 즉시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국가 예산이 없어서 각종 공공예산이 축소되고 민생경제가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7억 원의 예산을 긴급 편성해 초대형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하는 것은 전형적인 혈세 낭비 사업”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신라 천년의 문화 자산을 자랑하는 경주에 초대형 태극기 게양대는 어울리지 않고, 오히려 천년문화의 문화적 위상이 실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참석자들은 “사업의 취지로 거론되는 시민들의 애국심 함양과 태극기 선양은 초대형 태극기 게양대 설치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며 “경주시는 천년고도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은 이 사업을 취소하고 민생에 더욱 전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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