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스트리트북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살아가게 한다
나나 올리브에게 |저자: 루리 |문학동네
강미유 기자
miu@newsbalance.co.kr | 2026-09-09 00:07:26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나나 올리브에게>도 그랬다. 작가의 전작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것만 알았을 뿐, 제목에 대한 호기심과 따뜻한 표지 그림이 좋아 사놓고선 반년 넘게 묵혔다.
계절이 두 번 바뀌고 마침내 집어 들고선 아무것도 모르고 읽기를 참 잘했다 싶었다.
200쪽 남짓 얇은 두께에 간간이 등장하는 큼지막한 삽화, 애써 추리할 필요 없는 단순한 서사. 가볍게 책장을 넘기다 중간쯤에서 맨 처음으로 되돌아갔다. 아, 이거 이렇게 읽으면 안 되겠구나.
나이를 먹을수록 빨리 읽는 책은 많아지는데 아껴 읽고 싶은 책을 만나는 일은 드물어진다. 오랜만에 그런 책을 만났으니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사람들은 올리브나무가 있는 오래된 집에 대해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곳에는 나나 올리브라는 사람이 살고, 개가 한 마리 혹은 여러 마리 있다고 했다. 나나가 젊은 여자였다는 사람도, 나이 든 노인이었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똑같다.
“그 집에 가면 다 괜찮아질 거야.”
그 말을 믿은 건 그런 이야기라도 믿어야 했던 사람들이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삶이 엉망이 된 사람들.
삼십 년 전 그곳에 머물렀던 다리스도 어른이 되어 올리브나무 집을 다시 찾아간다. ‘나나에게’로 시작해 ‘당신의 코흘리개로부터’로 끝나는 오래된 편지들이 적힌 노트를 발견한다. 편지를 따라가다 보면 왜 사람마다 기억하는 나나와 개의 모습이 달랐는지, 왜 그 집에 가면 괜찮아질 수 있었는지가 조금씩 드러난다.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슬픔을 안고 있어요. 그 사실이 나를 버티게 해요. 가끔은 슬픔이 턱밑까지 차올라서 그만 잠겨 버리고 말 것 같을 때, 내 옆에 나처럼 턱밑까지 차오른 슬픔 속에서 천천히 앞으로 헤엄쳐 가는 사람을 보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나도 아, 아직 괜찮구나, 하고 따라서 헤엄을 쳐요.”
올리브나무 집에 머문 사람 중 상처를 멋지게 극복하거나 이제 행복해졌다고 말하는 이는 없다. 평범하고 나약한 사람들이 무너지고 후회하면서도 살아갈 뿐이다. 누군가를 극적으로 구해내는 대신 먼저 헤엄치고, 그 모습을 본 사람이 뒤따라 헤엄친다.
그렇게 한 사람의 이야기는 다음 사람에게 가 닿는다. 코흘리개가 나나에게 쓴 편지를 읽은 누군가는 그 노트에 자신의 말을 보탠다.
“엉망인 사람도 살 수 있나? 망가진 인생도 살아도 되나? (…) 그런데 당신의 편지를 읽고 보니 알겠어. 어떻게든 살아내면 무언가가 남아. 아무것도 남길 게 없는 내 인생에게조차 이 편지가 남았잖아.”
잘 살아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냈다는 이야기. 삶이 망가졌다고 생각한 사람도 누군가에게 말을 남기고, 그 말은 다시 다른 사람에게 가 닿는다.
이 책에서 희망은 그런 식으로 이어진다.
루리 작가는 이 책을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어서, 찾아야 할 무언가를 생각해 내야만 해서 시작한 이야기”라고 했다. 어쩌면 올리브나무 집도 그렇게 만들어진 곳이지 않을까. 길을 잃은 누군가가 찾아가고, 거기서 받은 위로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건네면서 마침내 진짜가 되는 곳.
다 읽고 나서야 이 책이 어린이책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걸 알았다. 어린이가 읽으면 무엇을 볼지 궁금하다. 살아온 시간이 제법 쌓인 어른에게는, 어느새 자신을 여기까지 살아오게 한 사람들이 하나둘 떠오르는 이야기였는데 말이다.
|한성수. 내가 왜 이 일을 택했나 반평생 후회 속에 살았지만, 그래도 어느 동네서점이라도 발견하면 홀린 듯 들어가 종이 냄새 맡으며 좋다고 웃는 책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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