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스트리트북스] 코로나19 시대의 사랑

앞으로 올 사랑│저자: 정혜윤│위고

번역가 조민영

mdbiz@newsbalance.co.kr | 2023-11-22 00:05:51

  /조민영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우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에서 활동 중인 네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번역가 조민영] 날이 부쩍 추워졌다. 불과 한 주 사이에 여름에서 겨울로 건너뛴 듯하더니 독감 환자도 늘고 주변에선 코로나19에 걸렸다는 소식도 간간이 들려온다. 아이들 기침 소리에 혹시 하는 생각도 들지만 전처럼 ‘큰일났다’는 불안감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 사람들은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고 얘기한다. 손소독제도 마스크도 거리두기도 먼 옛일 같다. 사실 나는 꼭 작년 이맘때 병에 걸려 후각과 미각을 상실해 일주일간 신세계를 경험했고, 공식적으로 마스크를 벗은 건 기껏해야 6개월 전 일이다. 그렇게 대단했던 사건을 잊기에 1년이란 시간은 너무 짧지 않은가. 적어도 내 경우 기억력은 참 알 수 없고 제멋대로다.

 

코로나19는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인 대유행)에서 엔데믹(풍토병화)으로 우리 삶에 슬그머니 들어앉았다.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후유증을 겪는 중이지만 큰 틀에서는 일상을 회복해가고 있다. 어떤 면에선 그간 억눌렸던 욕망이 폭발하듯 무서운 속도와 열정으로 과거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한산했던 인천공항이 다시 붐비고 나라 밖으로 무대를 옮긴 TV 프로그램이 그 기세를 증명한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때, 의식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돌아가게 될 일상은 과거와 달라야 할 거라며 ‘변화’를 강조했다. 이 인수공통감염병이 보내는 자연의 경고를 엄중히 듣고 지금 당장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중 정혜윤 작가가 쓴 <앞으로 올 사랑>은 가장 우아하고 인문학적인 방식으로 코로나19가 촉발한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한다.

 

작가는 변화해야 한다면 어떻게 새로운 세계로 잘 들어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우리 세대보다 먼저 감염병을 겪은 피렌체 인문학자 보카치오가 쓴 <데카메론>을 떠올렸다. <데카메론>은 흑사병이 창궐한 14세기 유럽을 배경으로 남녀 10명이 성과 쾌락, 즉 ‘사랑’을 원초적으로 이야기하는 책이다. 작가는 흑사병에서 사랑을 생각했던 보카치오처럼, 코로나19라는 ‘디스토피아 시대의 10가지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데카메론> 속 농밀한 춘화 같은 이야기를 기대했던 분에겐 미안하지만, <앞으로 올 사랑>에서 말하는 사랑이란 한마디로 ‘관계 맺기’다. 팬데믹은 인류가 그 어느 때보다 긴밀하게 연결돼 있음을 보여줬고, 그 연결고리에 인간종만이 아닌 박쥐와 야생동물, 자연도 있음을 알려줬다. 작가는 “앞으로 올 사랑에 우리가 한 번도 마음을 주지 않았고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않았던 이런 존재에 대한 사랑이 더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 10가지 사랑 이야기에는 코로나19가 있기 훨씬 전부터 인류, 동물, 지구에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준 사람들이 등장한다. 지구 밖으로 우주탐사선을 날려 보내기 전, 미지의 생명체에게 전달할 ‘지구의 소리’를 모은 사람이 있다. 멸종위기 동물을 찾아다닌 끝에 개체수를 늘리고 그들과 사랑에 빠진 사람도 있다.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에서 자연과 사람이 깊게 연결돼 있음을 얘기했고, 그 책을 씀으로써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의 생명을 구했다.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했을 때 스탈린은 박물관 미술품이 파괴될까 걱정했지만 식물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는 진정한 인류 유산인 씨앗 38만 개를 지키려 애썼다.

 

정혜윤 작가는 “코로나19가 지나면 새로운 인류,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세계사에 등장하기를 바란다”고 썼다. 흑사병이 지나가고 르네상스가 일어났듯, 엔데믹과 기후위기 시대에는 새로운 휴머니즘이 절실하다. 앞으로 올 세대가 학교에 가고 친구를 만나고 여행을 하는 소중한 일상을 계속해서 누리려면, 지금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

 /조민영 

|번역가 조민영. 세 아이가 잠든 밤 홀로 고요히 일하는 시간을 즐긴다.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번역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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