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스트리트북스] 오십, 비로소 내게 맞는 온도를 찾는 시간

나이 오십에 청소 노동자 |저자: 송은주 |시프

북에디터 한성수

mdbiz@newsbalance.co.kr | 2026-06-17 09:00:53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북에디터 한성수] 요즘 동창을 만나면 대화 흐름이 묘하게 비슷하다. 처음엔 건강 얘기로 시작한다. 허리가 아프다, 노안이다, 이제 밤새우면 회복이 안 된다. 웃으며 나이 듦을 인정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야기는 조금 더 현실적인 곳으로 넘어간다. “작은 가게나 하나 해볼까?” “뭐라도 배워야 하지 않나?” “근데 이제 와서 뭘?”

좀 더 젊었을 땐 앞날에 대한 상상이 조금은 설렜을지 모른다. 하지만 오십 줄의 현실은 다르다. 살날은 아직 한참인데 익숙했던 일의 끝은 생각보다 가까워 보이고, 막상 그다음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한참 이야기 나누던 끝에 “로또 당첨만이 답”이라는 우스갯소리로 결론을 내리지만, 그런 시답잖은 농담엔 꽤 묵직한 고민이 숨어 있다. ‘지금까지 해온 일이 사라지고 나면 나는 무엇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 고민 중에 만난 책이 <나이 오십에 청소노동자>다. 만약 ‘나이 오십에 카페 사장’, ‘나이 오십에 크리에이터’, ‘나이 오십에 월 천만 원 벌기’였다면 그냥 지나쳤을 거다. 멋진 인생 2막 이야기는 이미 차고 넘치니까.

그런데 청소노동자라니. 성공을 말하는 제목도, 변신을 약속하는 제목도 아니다. 오히려 너무 벌거벗은 현실 단어라 눈길이 갔다. 나이 오십에 시작한 청소 일이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바꿨다는 걸까.

저자는 한때 인터넷서점 직원으로, 학원 강사로, 전업주부로 살아왔다. 나이 오십을 지나 병원 청소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큰 결심 끝에 내지른 인생 도전기가 아니다. 청소 일을 통해 인생 의미를 찾았다거나, 제2의 행복을 일궜다는 식의 전형적인 메시지는 찾아볼 수 없다. 

이른 새벽, 청소노동자로서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을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은, 불 꺼진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나를 맞아주는 듯한 온기다.”

하루 동안 사람들이 남기고 간 흔적, 소파와 책상과 바닥에 은은하게 남아 있는 온기. 저자는 그 공간에서 뜻밖의 평온을 발견한다. 까다로운 학부모도 공부에 지친 학생도 없는, 그리하여 나 스스로 계속 내 쓰임을 평가하고 자책하고 독촉할 필요가 없는 곳. 자신이 찾던 적정한 삶의 온도가 바로 그곳에 있다.

내게 맞는 적정한 삶의 온도는 무엇일까. 쓸모에 매달리느라 내게 맞는 온도는 등한시하며 살아온 게 우리 모두의 현실일 테다.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힘든 건 쓸모가 없어져서가 아니라, 계속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을 놓지 못해서일지 모르겠다. 그런 시간 끝에 저자가 찾은 건 대단한 성공이 아니었다. 몸을 움직이고, 맡은 일을 끝내고, 그 대가를 받는 정직한 노동의 감각이었다. 누군가의 인정이 아니라 스스로 느끼는 작은 만족.

책에는 아이를 키우며 느낀 불안, 가족을 위해 미뤄둔 시간, 어느 순간 나를 설명할 이름이 사라졌다는 허전함도 솔직하게 담겨 있다. 나와는 사뭇 다른 삶이지만 이상하게 자꾸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건, 저자의 고민이 결국 대부분 중년이 지닌 질문과 같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를 설명하던 것들이 하나씩 사라진 뒤에도, 나는 괜찮을까.’

어쩌면 그 답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을지 모른다. 우리는 새로운 시작이라고 하면 자꾸 인생을 뒤흔들 만큼 큰 변화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 책은 조금 다르게 말한다. 일단 한번 해보라고. 잘 맞으면 계속하면 되고, 아니면 말고.

그런 면에서 보면 오십이라는 나이는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시기가 아니라, 비로소 조금 덜 눈치 보고 뭐든 시작할 수 있는 때일지 모른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평생 생각도 안 해본 어떤 일이 내게 뜻밖의 설렘과 즐거움을 줄지. 나이 오십에 청소노동자처럼.

 
|한성수. 내가 왜 이 일을 택했나 반평생 후회 속에 살았지만, 그래도 어느 동네서점이라도 발견하면 홀린 듯 들어가 종이 냄새 맡으며 좋다고 웃는 책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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