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스트리트북스] 요리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주는 요리책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 헬렌 니어링 지음 | 디자인하우스

북에디터 유소영

mdbiz@newsbalance.co.kr | 2023-12-06 00:05:12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우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에서 활동 중인 네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북에디터 유소영] 집에서 내 손으로 밥을 해 먹게 되었을 무렵, 나는 여러 권의 요리책을 샀다. 할 줄 아는 것이 라면과 달걀부침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쉽고 간단하게 요리할 수 있는 콘셉트의 요리책이 인기여서, 나도 기세 좋게 요리책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래 가진 못했다. 나는 요리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팔자가 아님을 금방 깨달았다. 나는 전기밥솥을 버렸다. 집에서 자주 밥을 먹지 않다 보니 해놓은 밥은 결국 상하기 일쑤였다. 조금씩 나누어서 냉동실에 얼려놓기도 했지만 결국은 그마저도 먹지 않아 쌓이게 되었다. 냉장고 안 채소는 조금만 신경을 쓰지 않으면 바로 생기를 잃고 액체로 변해갔다.

 

나는 결국 채소와 과일 사기를 포기했다. ‘우리의 부엌은 바깥에 있다’를 외치며 외식하기 시작했다.

 

그즈음 발견한 책이 바로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이다.

 

헬렌 니어링은 이 책에 분명하게 써두었다. “나는 ‘대중의 입맛을 만족시키기 위해’ 이 책을 쓰는 게 아니다.” 헬렌은 영양가 있고 무해하고 간소한 음식을 소개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이 책에 실린 레시피는 준비해야 하는 재료도 적을뿐더러 조리법도 열 줄을 넘는 것을 보기 힘들 정도로 간단하다.

 

헬렌은 독자들에게 말한다. 요리를 많이 하지 않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이 책을 읽기를, 식사를 간단히, 더 간단히, 빨리 준비하고, 거기서 아낀 시간과 에너지는 시를 쓰고, 음악을 즐기고, 자연과 대화하고, 테니스를 치고, 친구를 만나는 데 쓰라고. 몸에 음식을 공급하는 일에 그리 공을 들이지 말라는 이야기다.

 

아름답고 맛있는 요리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동감을 얻지 못할 주장이지만, 나에게는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음식 만들기가 괴로운 노동이라면, 굳이 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나도 요리를 하는 데 쓰는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곳에 더 유용하게 쓰기로 마음먹었다.

 

이 요리책에 있는 조리법은 가능한 한 밭에서 딴 재료를 그대로 쓰고, 비타민과 효소를 파괴하지 않기 위해 가능한 한 낮은 온도에서 짧게 조리하고, 가능한 한 양념을 치지 않고, 접시나 팬 등 기구를 최소한 사용한다는 방침을 고수해서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먹으면 준비가 더 간단해지고, 조리가 간단해지며, 소화가 쉬우면서 영양가는 더 높고, 건강에 더 좋고, 돈도 많이 절약된다고 한다.

 

실제로 니어링 부부는 반세기 넘게 의사 도움을 전혀 받지 않으면서도 건강하게 오래 살았다. 헬렌 니어링의 남편 스코트 니어링은 100세가 되던 해, 음식을 서서히 끊음으로써 생을 마감했고, 헬렌 또한 마찬가지 방식으로 생을 마감하고자 했으나 1995년 갑작스러운 차 사고로 92세에 사망했다.

 

야근을 하다가 삼각김밥을 사 먹으며 생각하곤 한다. 어쩌면 헬렌 니어링 할머니는 도심에 사는 현대인들이 밭에서 바로 딴 싱싱한 채소와 과일을 써서 음식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돈이 많이 드는 일인지 상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니어링 부부도 시골 낡은 농가에 살면서 채소와 과일, 곡식을 스스로 공급해 먹는다는 결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간도 돈도 공간도 가난한 사람들은 여러 종류의 과일, 채소, 통곡물 등을 먹기가 힘들다고 생각한다.

 

이 요리책은 들어가지 않는 게 많은 책이다. 고기나 생선류가 들어가지 않고, 백설탕, 흰 밀가루, 베이킹 소다, 달걀과 우유도 들어가지 않는다. 이렇게 다 제해도 우리에게는 유익한 음식이 아주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건강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채식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한번 읽어볼 만한 고전이다.

 

이 책은 1980년에 출간되었으며 한국에는 2001년에 소개되었다. 현재는 2018년에 나온 개정판을 구입할 수 있다. 사진에 있는 책은 2001년 판이다.

 

 

|북에디터 유소영. 책을 만드는 데 시간을 쏟느라 정작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한 것이 슬픈 출판 기획편집자. 요즘은 눈을 감고도 읽을 수 있는 오디오북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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