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스트리트북스] 우리의 과오는 어디로 향하는가

암스테르담│저자: 이언 매큐언│역자: 박경희│media 2.0

번역가 조민영

mdbiz@newsbalance.co.kr | 2024-01-17 00:09:42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우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다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번역가 조민영] 아무 생각 없이 기사 제목을 누른다. 자극적인 문구에는 반사적으로 손이 간다. 대부분 끝까지 읽지도 않고 눈으로 찍듯 문단을 대충 훑고 나와 또 다른 기사로 갈아탄다. 오늘은 누가 무슨 일로 포토라인에 섰는지, 누가 누구와 헤어졌는지 이런 기사가 항상 목록 상단을 차지한다. 이름도 신박한 ○○녀, ○○남이 날마다 탄생하는, 지루할 틈 없는 온라인 세상이다.

 

이 온라인 세상에서 우리는 남의 삶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다. 그가 유명인이고 평소 이미지와 전혀 다른 논란에 휩싸인다면 그 맛과 식감은 배가된다. 논란이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이야기를 생산하는 쪽은 의혹만으로도 이목을 끌었으니 반은 성공한 셈이고, 거기에 단독이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시간이 지나면 본질은 흐려지고, 더는 우려낼 게 없을 때까지 온갖 과거사와 은밀한 사생활이 파헤쳐진다. 결국 진실은 온데간데없고 한 사람을 파멸로 몰아간 출처 없는 뜬소문은 휴지 조각이 되어 슬그머니 사라진다.

 

이언 매큐언 소설 〈암스테르담〉에 등장하는 버넌은 대중의 알권리를 앞세운 이런 저속하고 선정적인 옐로저널리즘의 대변인으로 묘사된다. 일간지 ‘더 저지(The Judge)’ 편집국장인 그는 자신이 공공의 적으로 규정한 외무장관 가머니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 담긴 사진을 입수하고 충격과 흥분에 이어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명분은 이렇다. 차기 영국 총리로 거론되는 가머니의 위선을 까발려 그가 지향하는 정책과 정치 노선을 저지하고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면 추락하는 신문사는 물론이고 나라도 구할 수 있다.

 

‘그런 사진이 있다더라’라는 소문만으로도 신문 판매 부수는 17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고 신문사는 샴페인 터뜨릴 준비로 분주하다. 물론 편집국 내에는 개인 사생활을 존중하자는 소수의견도 있다. 하지만 가머니 평판을 위한 게 아니라 비난 여론이 우세할 경우에 대비한 발뺌용 출구전략이다.

 

편집회의에서 1면에 실릴 가머니 사진을 미리 본 한 젊은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아는 사람이 대중 앞에서 옷을 벗고 채찍질 당하는 모습을 보는 듯하더라고. 가면이 벗겨지고 형벌을 받는 모습 같더라고.” 하지만 구린내가 풀풀 나는 ‘더 저지’의 심판을 나서서 저지하려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부음 기사 담당자는 가머니가 목을 맬 경우에 대비한 원고까지 준비한다.

 

사진 공개 직전 한발 앞선 가머니 측의 노련한 술수로 여론이 뒤집힌다. 가머니 죽이기에 동참했던 다른 신문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논조를 바꿔 “공인이라도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 사적 취향은 개인의 영역으로 남겨야 한다”는 사설을 싣는다. 여론은 이제 벼룩의 윤리 감각을 지닌 협잡꾼이라며 버넌 죽이기에 나선다.

 

이언 매큐언은 소설 제목이기도 한 암스테르담을 “차분하고 문명화된 도시, 이토록 관대하고 열린 사고를 지닌 어른스러운 장소”라고 쓴다. 과오를 지닌 위선자들은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하다 바로 이곳에서 파국을 맞는다.

 

1998년 작품 〈암스테르담〉은 26년 전 영국에서 발표된 소설이지만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마치 지금 여기의 현실을 이야기하듯 시차를 전혀 느낄 수 없다.

 

만화가 이우일이 표지 그림을 그린 2008년 판 〈암스테르담〉은 국내에서 한동안 절판 상태였다가 같은 역자의 번역으로 2023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번역가 조민영. 세 아이가 잠든 밤 홀로 고요히 일하는 시간을 즐긴다.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번역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 뉴스밸런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