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스트리트북스] 우리는 우리의 정원을 가꿔야 한다
리디아의 정원 |그림: 데이비드 스몰, 글: 사라 스튜어트 |역자: 이복희 |시공주니어
번역가 조민영
mdbiz@newsbalance.co.kr | 2026-01-21 15:37:09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번역가 조민영] 지난주 칼럼 책 <스님의 청소법>을 읽고 그간 미뤄뒀던 책장 정리를 했다. 먼저 서가에 쌓인 먼지를 털고 정리할 책을 하나씩 꺼내놓았다. 고르고 보니 올해 중학생이 되는 막내를 끝으로, 이제 읽어줄 사람 없는 어린이책이 대부분이다.
학습만화와 저학년용 읽기책, 그림책을 쌓아놓고 다시 선별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어느새 책 정리는 뒷전이고 한 권씩 펼쳐 읽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러다 손에 잡힌 <리디아의 정원>. 아이들 손때가 고스란히 묻은 데다 나도 참 좋아하는 그림책이다.
<리디아의 정원> 배경은 1930년대 대공황 시기, 주인공은 열 살 남짓한 소녀 리디아 그레이스다. 아빠는 일자리를 잃었고 옷을 짓는 엄마도 일감이 끊긴 지 오래다. 결국 리디아는 입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 도시에서 빵집을 하는 외삼촌네로 떠난다.
리디아는 엄마가 손수 고쳐준 옷을 입고 할머니가 챙겨준 금잔화, 코스모스, 백일홍 꽃씨 봉투를 품에 안은 채 홀로 외삼촌네로 가는 기차에 오른다.
낯선 곳에 와서 주눅이 들 법도 한데 리디아는 아주 씩씩하다. 무뚝뚝하고 잘 웃지 않는 외삼촌한테 시를 지어드리고, 빵집에서 함께 일하는 에드 아저씨, 엠마 아줌마와는 금세 친구가 된다.
그러다 발견한 비밀 장소에서, 리디아는 외삼촌을 웃게 할 비밀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바로 지저분한 옥상을 온갖 꽃이 만발한 정원으로 가꾸는 것.
리디아는 자그마한 손으로 부지런히 빵집 일을 도우며, 고향집 할머니에게서 전수받은 원예 솜씨를 한껏 발휘한다. 리디아 손길 덕분에 우중충한 시멘트 건물에는 화사한 봄이 내린다. 그래서일까, 왠지 빵집에 손님이 더 많아진 듯하고, 외삼촌에게서 희미한 미소를 본 듯도 하다.
이렇게 결코 자신의 빛을 잃지 않는 리디아는 낯선 도시에서도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꾸준한 돌봄과 기다림으로 주변을 변화시킨다. 끝내 외삼촌 미간에 깊게 팬 주름은 활짝 펴지지 않았지만, 리디아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던 날 외삼촌이 리디아를 꼬옥 안아주는 모습은 비밀 프로젝트가 완벽하게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리디아의 작지만 단단한 모습을 보니, 철학자 볼테르가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결론에서 남긴 유명한 격언이 떠오른다.
“우리는 우리의 정원을 가꿔야 한다(Il faut cultiver notre jardin).”
사실 볼테르가 말한 정원은 세상 모진 풍파를 견디다 못해 도피하는 ‘체념의 공간’이다. 하지만 리디아의 정원은 이 체념의 문턱을 훌쩍 넘어선다. 캉디드가 절망을 잊으려 마지막으로 안주한 곳이 정원이라면, 리디아는 그 절망을 이겨내기 위해 정원의 문을 활짝 열고 이웃을 초대한다.
어쩌면 우리에겐 캉디드의 정원과 리디아의 정원이 둘 다 필요할지 모르겠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거대한 힘이 아니라, 내가 발 딛고 선 자리에서 때로는 주위를 둘러보며 묵묵히 내 할 일을 하는 나날의 성실함이기 때문이다.
|조민영. 세 아이가 잠든 밤 홀로 고요히 일하는 시간을 즐긴다.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번역위원으로 참여했다.
[ⓒ 뉴스밸런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