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스트리트북스]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 |저자: 윌리엄 해즐릿 |역자: 공진호 | 아티초크
북디자이너 강은영
mdbiz@newsbalance.co.kr | 2025-12-31 00:05:05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책 제목을 보자마자 친구 말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났다.
이 책은 영국 작가 윌리엄 해즐릿이 쓴 에세이 여덟 편을 담았다. 표제작은 일곱 번째에 실렸다. 첫 문장부터 마음에 쏙 든다.
청춘은 죽음을 믿지 않는다. (177p)
해즐릿은 젊은 날 우리가 시간을 대하는 태도를 세밀하게 보여준다. 젊을 때 우리는 죽음을 남 일로 여긴다. 시간은 무한하고 가능성은 끝이 없다. 언젠가는 반드시 해낸다고 믿는다. 내일도, 모레도, 그다음 날도 늘 그대로라 여긴다.
나 역시 그랬다. 스무 살 무렵 서른을 상상하지 않았다. 서른에는 마흔이 아득했다. 돌아보니 시간을 영원으로 착각했다. 어쩌면 시간이 흐른다는 감각 자체를 느끼지 않았다.
해즐릿은 말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생동하며, 청춘은 그 흐름에 맞춰 전진할 힘과 열정을 지닌다고. 그 찬란함 속에서 자신도 불멸처럼 존재한다고 믿는다. 실패나 죽음 따위는 생각조차 안 한다.
청춘은 단순하고 추상적인 까닭에 자연처럼 자신도 영원하리라 착각한다. (178p)
젊을 때 우리는 세상 모든 경험을 다 누린다고 믿는다. 모든 책을 읽고, 모든 곳을 여행하고, 모든 가능성을 실현한다고.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깨닫는다. 선택은 곧 포기다. 한 길을 가면 다른 길은 영영 못 간다.
그는 이 환상을 단순한 착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 불멸감이야말로 삶을 추진하는 강력한 원동력이라 한다. 죽음을 느끼지 않기에 무모하게 도전하고, 온 힘으로 열정적으로 산다고 말한다.
작은 실패나 경험으로 환상이 무너지면, 우리는 처음으로 유한함을 마주한다. ‘세상에 가치 있는 무언가를 남길까’, ‘모든 게 사라질까’ 하고 말이다.
해즐릿은 청춘의 찬란함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이면을 정면으로 들이댄다. 환상은 삶을 가능하게 만든다. 하지만 동시에 그 환상이 깨지는 순간에야 비로소 우리는 진짜 삶의 무게를 느낀다.
스무 살 그 무한한 시간은 이제 없다.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를 읽으며 환상이 깨진 자리에서 비로소 삶을 제대로 본다는 사실을 마주한다.
더 이상 영원하지 않기에, 오늘을 더 절실하게 산다는 진실을.
|강은영. ‘표1’보다 ‘표4’를 좋아하는 북디자이너. 인스타그램 디자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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