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 칼럼-국제정세의 진실] 왜 트럼프를 그토록 ‘증오’하는가?(3)…그와 미국인들은 한국을 ‘보수 동맹국’으로 보지 않는다

편집국

news@ | 2024-11-03 16:05:46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보수주의 국가로 보고 있을까? 동맹국가로 판단할까? 현 정부를 보수우파로 여길까?

지난 8년 그를 지켜보며 늘 품은 의문이다. 자신이 보수우파라 생각하는 한국인들은 당장 “무슨 소리냐?”고 반문할 터이다. 한국에게 높은 방위비 분담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트럼프를 강하게 비판해 온 한국인들은 그를 더 증오하고 더 불신할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의문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트럼프의 한국 정책을 인식·판단하기 위한 중요한 실마리다. 그 속에 지난 8년 동안의 한국 정치의 명암과 국제정세·미국정치·대미외교에 관한 정부의 능력, 국민들의 인식 정도가 다 들어있다. 그 의문들은 트럼프 개인만이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보수주의 미국인들이 한국인들에게 던지는 중대한 질문들이다.

트럼프는 완강한 보수우파 포퓰리스트. 정치 신의를 최고 가치로 생각한다. 같은 이념의 동지들을 소중하게 여긴다. 그들이 이념과 인간관계를 배신하지 않기를 바란다. 4년 임기 내내 동지들 국가는 적극 도왔다. 헝가리·폴란드·엘살바도르 등. 트럼프 정치의 핵심이다. 그러나 그는 문재인 정권의 이념을 불신했다. 윤석열 정부가 이념을 배신했다고 봤다. 트럼프의 의문들은 거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인들은 윤석열 대통령과 한국을 보수로 보지 않는다. 지난 10월 미국 보수 매체가 ‘보수주의 반 글로벌리스트 지도자 명단’이란 글을 실었다. “국가주권·국경안보·경제 보호주의를 주장하며 UN·EU 등 글로벌리즘 국제기구를 반대하는 세계 지도자”라는 설명. 트럼프와 빅토르 오반 헝가리 수상, 안드레즈 두다 폴란드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조르지아 멜로니 이탈리아 수상 등 10명이 꼽혔다. 인구 660만 명의 작은 나라 엘살바르도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도 들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없었다. 국제정세에 상당한 식견을 가진 많은 미국인들이 논쟁했다. 이들은 글로벌리즘의 세계 지배를 안타까워하며 보수 정치인들을 저마다 더 꼽았다. 며칠 뒤 글쓴이는 포르투갈·네덜란드 등의 정치지도자 10여명을 추가한 글을 다시 썼다. 역시 누구도 윤 대통령, 대한민국을 말하지 않았다.

이들 머릿속에 윤 대통령이나 대한민국이 보수우파라고 전혀 각인되어 있지 않다는 뜻. 냉엄한 현실. 트럼프는 이런 미국인들과 다를까? 대통령이니 달라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국가원수로서 유력 정치지도자로서 그렇게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을 여러 번 경험했다.

트럼프의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콜린 맥마스터는 자신의 책에 “트럼프가 대한민국같이 우리를 몹시 싫어하는 국민들을 미국이 지켜줘야 하는지를 물었다”고 적었다. 도대체 왜 트럼프가 ‘증오(hate)’란 센 단어를 사용하며 그런 의문을 나타냈을까? 근거가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한국 방문에서 큰 수모를 겪었다. 17년 말 그의 방한에 앞서 미국 ‘폭스 뉴스’ 기자가 서울에 왔다. 기자에게 당시 대통령 문재인의 외교참모가 트럼프는 미친 사람, 김정은은 이성을 가진 사람이란 식으로 말했다. 물론 미국에 보도 되었다.

대통령 고위 참모가 곧 국빈방문 할 동맹국 원수를 그 나라 기자에게 그렇게 막말하는 것은 있어서 안 되는 일. ‘보수우파 트럼프’에 대한 ‘좌파 문 정권’의 인식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 기자는 국제보도로 이름을 떨친 쥬디스 밀러. 당시 69세. 비밀 취재원을 밝히지 않아 86일 옥살이할 정도로 강단이 있는 기자. 미국 언론사에 큰 획을 그었다.

그녀는 “문재인 대통령을 가장 걱정하게 하는 사람은 ‘한반도에서 미군을 몰아내고 자신이 주도하는 독재체제 아래에서 남북통일 하겠다고 맹세한 잔혹한 독재자 김정은’이 아니라 트럼프”라고 적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한국 정부의 정세인식과 트럼프에 대한 몰상식한 태도를 한 바퀴 돌려 비판한 것. 문 정권 이념의 정곡을 찔렀다.

“한국인들은 방문객들이 불쾌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하는 것에 조심스러운 경향이 있다. 그러나 청와대 문 대통령 참모들은 의문의 여지없이 트럼프를 겨냥했다...한 고문은 ‘그가 북한을 선제공격을 시도할 만큼 미쳤을까요?’라며 ‘김정은은 이성을 가졌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거친 표현·외교 경험 부족이 예기치 못한 충돌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걱정했다...좌파 성향 문재인은 트럼프가 한국을 원하지 않는 전쟁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밀러는 “문은 북한에 대한 트럼프의 ‘최대 압박’ 정책을 마지못해 받아들였다”고 썼다.

많은 나라를 취재했던 밀러는 동맹국 대통령을 마구 다루는 청와대의 천박한 말솜씨에 놀랐다. 아무리 좌파정권이라지만 ‘북한 독재정권·독재자’를 감싸는 한국 정부의 태도가 전혀 뜻밖이었다. 당황하고 황당한 기색이 기사 전체에 짙게 묻어있다.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은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원하는 것. 어떻게 문재인은 마지못해 받아들이는가? 문 정권이 한미동맹의 상대방 수장에게 김정은을 칭찬하며, 그를 압박하고 선제공격할 가능성을 걱정하는 것은 거꾸로 된 상황. 대한민국은 미국보다 북한과 사실상 동맹관계임을 문재인 정권은 트럼프에게 보여주었다.

문 정권은 트럼프를 몹시 두려워했으며 그가 김정은 정권을 끝장낼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당연했다.

트럼프는 이란 핵을 용납하지 않기 위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세력과 민주당의 극렬 반대를 물리치고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했다. 협정은 친 무슬림 오바마가 중동정치의 주도권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이란으로 넘겨주기 위해 만들었다. 사실상 이란의 핵무기를 용인하는 것. 좌파들은 ‘오바마 최고의 외교 작품’으로 칭송했다.

트럼프는 협정 당사국인 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독일의 반대도 무시한 외교 강수를 두었다. 그런 그가 북한 핵도 그냥 두지 않을 것이라고 문 정권은 지레 겁냈을 것이다.

트럼프는 당연히 문 정권이 좌파임을 알았겠지만 그 정도로 북한 편을 들지는 몰랐을 것이다. 회담 등을 하면서 완전히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며 적이라고 느꼈을 수 있다. 문의 참모가 자신을 미친 사람으로, 김정은을 이성을 가진 사람으로 말한 기사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밀러 기자가 그렇게 놀랐으니 트럼프로서는 기가 막혔을 듯. 오죽했으면 안보보좌관에게 “왜 한국이 우리를 증오하느냐”고 했겠는가? “한반도에서 미군을 몰아내려는 김정은”을 더 감싸는 그들을 보며 “과연 미군 주둔이 맞는 일인가”라고 생각했을 터. ”한국은 동맹국이 아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청와대는 언론 등에 계속 트럼프를 비하했을 것이다. 국민 대부분은 문 정부가 트럼프를 막 대했던 사실을 반대로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 탓인지 보수우파들은 트럼프가 김정은을 봐 주는 것으로 안다. 아예 한 통속인 것으로 안다.

한국언론은 맥마스터 책에서 “우리가 한국을 지켜줘야 하는지 물었다”는 부분만 딱 떼어 내 그를 비난하는데 이용했다. 배경 모르는 국민들의 트럼프 증오심을 더 부추길 뿐.

■트럼프는 북한의 핵무기를 없애려 했다. 이란 핵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 특히 오바마 세력이 그에게 북한 핵을 수용하라고 공개 요구했기 때문에 폐기에 더 집착했다.

오바마 안보보좌관 수전 라이스는 17년 뉴욕 타임스 기고에서 트럼프에게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역사는 우리가 필요하면 북한 핵무기를 용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냉전 동안 수천 개 소련 핵무기라는 훨씬 더 큰 위협을 용인했던 것처럼,.."

그녀는 트럼프의 김정은 정권 비판이 특히 위험하다며 “평양에 대한 대응을 신중히 하라”고 요구했다. 친북 성향을 그대로 드러냈다. 바이든 정부에서도 ‘국내정책위원회’ 수장으로 최고 실세였던 그녀는 오바마·바이든의 북한 핵 정책을 판단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인물. 바이든은 이란 핵무기를 위한 협정의 복원에 매달리면서 북한 핵 폐기를 생각할 수 없다.

핵 수용은 오바마-바이든 정부의 일관된 논리. 21년 미국의 이란특사는 “미국과 동맹국들은 핵무기를 가진 이란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등에서는 이란에 대한 항복으로 간주했다. 라이스의 발언도 사실상 북한에 대한 항복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북한이 미사일을 아무리 쏴대도 바이든 정부는 별다른 조치도 하지 않는 것. 북한이 미국을 만만하게 볼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나 국민들이 바로 알아야 하는 부분. 이런 사정을 모르니 많은 사람들이 북한을 바이든이 혼낼 것으로 믿는다. 잘못된 생각이다.

트럼프는 북한 핵 폐기를 위해 2018년 싱가포르, 19년 하노이에서 김정은을 만났다. 한국의 반응은 대체로 나빴다. 트럼프가 인기를 노려 김정은을 국제무대에서 띄워주었다는 것이다. 미국 주류언론들은 당연히 그렇게 보도했다. 문 정부도 한국 기자들에게 그런 방향으로 설명했을 것. 트럼프가 김정은을 부를 때는 겉보기와는 달리 그를 압박하는 노림수가 있음을 파악했기 때문에 나쁜 여론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핵을 없애면 경제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 대답을 받기 위해 다시 하노이로 불렀다.

트럼프는 하노이에서 김정은이 핵 폐기 확답을 하지 않자 바로 대화를 중단하고 돌려보냈다. 김정은은 평양 사람들의 환호 속에 큰 보따리를 챙겨온다고 큰소리 치며 2박3일 기차를 타고 왔다. 돌아갈 일이 악몽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한국 대통령은 물론 미국 대통령 누구도 역대 ‘북한 수령’에게 돈 보따리 외에 참담함을 안겨 준 적이 없었다. 트럼프를 쉽게 생각하고 왔다가 김정은은 치욕을 느끼며 돌아갔을 것이다. 약속하지 않는 김정은에게 어떤 선물도 주지 않았다. 트럼프는 냉정한 승부사였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트럼프가 정치 쇼를 했다고 비난했다. 문 정권은 트럼프가 북한에 선제공격 하고 압박하려 한다고 걱정했다. 그래서 그에게 험한 소리 한 것을 한국인들이 알았다면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부통령 후보 제이디 밴스는 유세 중 이런 얘기를 했다.

“김정은은 끼니를 걸러본 적이 없다(청중 폭소). 김정은과 만났을 때 몰려든 사진기자들에게 트럼프는 ‘우리를 아주 날씬하게 보이게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김정은이 갑자기 기분 나쁜 표정으로 벌떡 일어났다. 이 일은 트럼프가 얼마나 유머 감각이 있고 외교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보여준 장면이었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데리고 논 모습을 설명한 것. 그러니 “김정은과 좋은 사이”라는 트럼프의 외교 수사를 액면으로 받아들여 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트럼프는 이란과 북한의 핵을 용납할 수 없다는 확고한 원칙을 가졌다. 그러나 한국 대통령과 정부, 일부 국민이 북한 핵을 두둔하는 상황에서 김정은과 핵을 요리하기는 대단히 어려웠을 것이다.

이스라엘을 보라. 자신들을 절멸시키려는 어떤 무기도 용납할 수 없다는 그들의 확고한 신념은 1981년 이라크 핵 시설, 2001년 시리아 핵 시설을 공중폭격으로 없애버렸다. 완강한 무력으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과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핵 개발 의지는 물론 반격 의지조차 완전 꺾어버렸다.

그러니 트럼프는 대통령 되자마자 이란 핵협정을 파기해 버렸다. 이스라엘 경우에서 보듯 미국의 도움도 당사국 정부와 국민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렸다. 문재인 정권은 오히려 트럼프의 도움을 무시하고 거절했다. 그의 발목을 잡고 비난했다.

(11월 4일 ‘마지막 4회’에 계속)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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