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 칼럼-국제정세의 진실] 우크라이나의 히틀러
편집국
news@ | 2023-10-05 16:27:25
히틀러의 부활인가? 그의 친위대원이 2023년 9월 캐나다 국회의사당에서 ‘전쟁 영웅’이 되어 기립 박수를 받았다. 그것도 두 번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300여 명의 의원들과 함께 98세 된 나치 졸병에게 다함없는 경의를 보냈다. 히틀러는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5천만 명 이상을 죽게 만든 희대의 전쟁광. 그가 패배에 몰려 1945년 4월30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78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역사의 어처구니없는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우크라이나 사람 야로슬라프 훈카는 악명 높은 ‘바펜-슈츠슈타펠(SS)’이란 나치의 무장친위대원. SS는 히틀러를 경호하는 소박한 조직으로 출발했으나 2차 대전 때는 제4의 군대로 활약했다. 훈카의 부대는 폴란드의 나치 저항 운동을 잔인하게 탄압했다.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은 그의 부대를 양민 학살 등을 한 범죄 집단으로 규정했다.
훈카는 SS에 자원하면서 “최고사령관 히틀러에게 절대 복종하겠으며, 용감한 병사로서 생명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다”고 선서했다. 블로그에 친위대원 2년여 시간을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뼛속까지 히틀러와 나치가 물들었다. 그는 전쟁이 끝난 뒤 영국으로 갔다가 캐나다에 정착했다.
젤렌스키의 연설에 앞서 캐나다 하원의장은 그런 훈카를 “우크라이나 독립을 위해 러시아에 맞서 싸운 우크라이나와 캐나다의 영웅”이라고 했다. 나치 병사가 전쟁 영웅이 되어 열광의 박수를 받는 역사의 역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역사적 사실은 단순하다. 2차 대전 때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소련)와 싸웠다면 바로 나치다. 소련은 히틀러와 가장 최악의 전쟁을 치른 나라. 소련과 폴란드 등이 나치 독일과 싸운 동부전선은 3,000만 명의 희생자를 냈다. 특히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의 중심지였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당시 히틀러를 상대로 전쟁을 하던 소련의 조셉 스탈린을 지원했다. 하원의장은 나치를 독립군이라 했다. 역사 왜곡이다.
정치는 생물체다. 살아 움직이며 늘 변한다. 역사도 그렇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역사는 악마가 되었다 영웅이 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 승자는 사실을 마음대로 바꾸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도 정권을 잡은 세력들이 수 없이 역사를 조작·왜곡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히틀러는 2차 대전의 승자가 아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세상이 변해도 승자가 될 수 없다. 히틀러와 나치를 승자로 칭송하는 황당한 상황을 만든 것은 바로 젤렌스키와 트뤼도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자마자 젤렌스키는 히틀러의 부패한 시체를 끌어냈다. 푸틴을 히틀러에 비교해 악마라 불렀다. 유대인 대학살을 상기시켜 세계의 동정을 얻기 위해서였다.
■ 나치에 열광한 유대인 젤렌스키
2차 세계대전 전, 우크라이나에는 매우 큰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반유대주의 역사는 길다. 그런 만큼 나치에 가세하거나 협력한 사람들이 많았다. 1941년 독일군이 키예프를 점령하자 “하일 히틀러”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렸다. 대학살이 이어졌다. 나치 독일군과 협력자들에 의해 100만 명 이상의 우크라이나 유대인이 죽었다.
젤렌스키는 다름 아닌 유대인이다. 히틀러를 악마라던 그가 히틀러의 병사에게 불끈 쥔 주먹을 쳐 올리며 열광하다니...정상이 아니다. 젤렌스키 측이 훈카의 의회 초청을 요청했을 때 그의 전력을 트뤼도가 모를 리 없었을 터. 코로나 통제로 수입이 끊긴 트럭 운전사들이 시위를 벌이자 트뤼도는 “나치들”이라고 비난했었다. 그도 젤렌스키처럼 돌변했다. 푸틴을 욕하기 위해 나치 사병을 소련에 저항한 독립 영웅으로 둔갑시킨 것은 무리 중의 무리다. 두 사람이 그토록 증오하던 히틀러와 나치를, 전쟁 지원을 얻기 위한 선전수단으로 삼은 것은 극도의 억지요 모순이다.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치루고 있다고 해서 모든 억지와 모순이 통할 수 없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를 뛰어넘을 수 없다. 악을 응징한다고 악의 사용을 정당화할 수 없다. 푸틴을 공격한다고 해서 히틀러와 나치를 정당화하는 것이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이유다.
■ 우크라이나의 나치주의
우크라이나에는 나치 이념이 깊게 뿌리 박혀 있다. 나치 협력자 동상이 수십 개 있다. 일부 거리의 이름은 전범 나치들의 이름이다. 우크라이나 군복에 나치 표장이 자주 보인다. 유럽 전역에서 백인 나치주의자들이 우크라이나를 위해 참전했다. 모두 우크라이나의 극단 민족주의 그룹이 지금도 나치주의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가 불쌍하고 안타깝다고 해서 그들의 나치 역사를 묻어버릴 수 없다. 전쟁이 터지자마자 미국 등 서방세계는 우크라이나의 "나치 문제"에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미국과 유럽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정치인·지식인·언론 모두 우크라이나 극단 민족주의와 나치 집단의 관계를 부인해 왔다. 그 밀접한 관계를 언급하기만 하면 “푸틴의 주장”이라고 치부하고 만다. 언론들은 군인들 제복에 나치 상징을 표시한 사진을 수정하거나 삭제했다.
진실은 얼마동안 억눌러질 수 있다. 그러나 캐나다 의회에서 실체는 폭발적으로 드러났다. 젤렌스키 등의 기립박수는 나치주의의 결과다.
느닷없는 훈카의 등장과 기립 박수에 세계는 놀랐다. 나치의 극심한 피해자인 폴란드는 분노했다. 우크라이나를 적극 지원해 오던 폴란드는 이미 우크라이나 곡물 수입을 중단했다. 이제 더 이상 무기를 공급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캐나다 하원의장은 “폴란드에서 잔인무도한 나치 악행으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과 유대인들에게 깊이 사과한다”며 사임했다. 그러나 폴란드는 전범으로 처벌하겠다며 훈카의 추방을 요구했다.
오바마·바이든 정부의 우크라이나 정책이 합리적이었다면 극우 나치주의자들을 멀리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나치주의자들을 키워주었다. 나치주의자들은 2014년 오바마 정부 지원의 마이단 쿠데타에 참여했다. 그들은 젤렌스키가 러시아와 평화협상에 나서려 하자 폭력 시위로 협박했다. 젤렌스키는 꺾였다.
백악관에는 열렬한 우크라이나 지지자인 바이든이 있었다. 바이든 가족은 우크라이나 재벌로부터 거액을 받았다는 혐의로 의회 조사를 받고 있다. 그 정도로 우크라이나 부패 기득권 세력과 가깝다. 무기·경제 지원과 NATO 가입을 약속하는 미국과의 새로운 전략 협정이 있었기 때문에 젤렌스키는 돈바스 지역 등에 강경 정책을 폈다.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극단 나치주의자들에 대한 저항은 자멸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2019년 당선된 젤렌스키는 평화와 정부 부패 척결, 경제발전을 약속했다. 그러나 젤렌스키 4년 동안 나라 빚은 1.6배 늘어나 1200억 달러가 됐다. 국가 생존조차 힘든 상황. 전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무능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인들은 늑대와 함께 살면 늑대처럼 울어야 한다고 말한다. 젤렌스키는 부패와 싸우기는커녕 부패와 함께 살면서 자신도 부패해졌다. 썩지 않으면 대통령으로서 생존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전쟁 중에도 무기와 징집영장을 팔고 군수물자를 떼먹는 정부와 군부가 장악한 새로운 부패 시대로 나라를 인도했다.
이제 히틀러에게까지 존경을 바치는 젤렌스키에게 여러 나라가 갈수록 등을 돌리고 있다. 전쟁을 치룰 수 있겠는가?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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