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유의 ailleurs] 양조위가 <화양연화>에서 보여줬던 비언어의 연기
침묵의 친구 |147분 |감독: 일디코 에네디|배급: 안다미로
강미유 기자
miu@newsbalance.co.kr | 2026-04-14 16:30:59
양조위는 “이 영화는 제 연기 인생에서 가장 공들인 작품으로 토니 역을 위해 실제 신경과학자 인터뷰와 식물 돌보기까지 했다”며 “은행나무와 소통이 고독을 치유하는 과정이며, 또한 영화 언어로 이번 촬영팀과 교감했다”고 말했다.
영화의 배경은 독일의 한 대학 식물원이다. 1832년부터 그 자리에 서 있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세 시대, 세 인물을 고요히 연결한다. 2020년, 홍콩 출신 신경과학자 토니(양조위)는 팬데믹(세계적인 전염병 대유행) 고립 속에서 나무와 교감하며 내면의 치유를 시작한다. 1908년, 대학 첫 여학생 앨리스(레아 세이두)는 차별의 시대를 헤치며 나무에서 위로를 찾는다. 1972년, 식물학도 한스(엔조 브룸)는 사랑하는 그레테(루나 배들러)와 나무 아래 청춘을 키운다.
이렇게 세 이야기는 뿌리처럼 서로 수렴하며 시간을 초월한 연대를 이룬다. 각 시대를 입힌 색채의 언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일디코 에네디 감독은 시대마다 전혀 다른 색감과 분위기를 부여한다. 1908년 세피아 톤은 역사 무게를 짊어지고, 1972년 따뜻한 녹색은 청춘의 생기를 뿜어낸다. 2020년 팬데믹 시대의 차가운 청백색은 토니의 고독을 시각적으로 체화한다. 색채 자체가 대사다.
제목이 <침묵의 친구>이듯이 이 영화에서 대사는 부차적이다. 시선, 손짓, 나무 뿌리와 인간 뇌의 몽타주, 아이의 성장 장면이 소통의 실체를 구성한다. 특유의 비선형 구조 안에서 언어 없이도 감정 전달은 완벽하다. 홍콩 출신인 양조위가 영국 억양 영어로 연기하지만 그 힘은 결국 침묵과 신체에서 나온다.
양조위는 인터뷰에서 ‘은행나무가 주연인 영화’라고 말했다. 영화속 은행나무는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욕망과 결핍을 흡수하고 반사하는 존재로 의인화된다. 세 시대의 이야기 모두 에로틱한 긴장감을 품고 있으며, 식물의 역동적 에너지가 그 긴장을 조율한다. 카메라는 뿌리처럼 인물 곁에 굳건히 머물며 호흡과 세포의 움직임까지 포착한다.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길가의 나무 한 그루를 다시 보게 만든다.
이번에 함께 내한했던 에네디 일디코 감독은 칸·베니스·베를린, 세계 3대 영화제를 모두 석권한 헝가리 출신의 거장이다. 국내에서는 2017년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와 레아 세이드 주연 2022년 <내 아내 이야기> 등으로 친숙하다.
이 가운데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는 에네디 감독이 왕가위의 <화양연화>를 레퍼런스로 삼았다고 꼽은 영화다. 두 영화 모두 일상의 표면 아래 숨겨진 강렬한 열망과 감정 억압을 그린다. <화양연화> 속 남자 차우(양조위)가 에네디 감독 영화 캐스팅으로 이어지게 됐다.
에네디 감독은 “2020년 고독한 신경과학자 토니 역에 양조위를 택한 건, 왕가위 작품에서 보여준 내적 고요와 미세 표정 연기 등 ‘충만한 침묵’이 세 시대 소통의 중심축으로 적합했기 때문”이라며 “제목 〈침묵의 친구〉는 은행나무를 뜻하지만 양조위의 존재감을 나타낸다”소개했다.
|삶은 다른 곳에 있다. 때때로 예술영화, 독립영화, 다큐영화 등 다양성 영화를 만나러 극장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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