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스트리트북스] 운동하기 싫은 사람도 달리고 싶어지는 이유

길 위의 뇌 |저자: 정세희 |한스미디어

강미유 기자

miu@newsbalance.co.kr | 2026-10-21 00:07:17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북에디터 한성수] 나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시도조차 안 해본 건 아니다. 1 대 1 PT도 받아보고 요가도 해봤다.

한번 시작하면 나름 성실하게 다닌다. 문제는 결제한 기간이 끝난 뒤다. 다음 수업을 등록하겠느냐는 질문에 미련 없이 웃으며 작별을 고한다. 운동을 끝낸 게 아니라 운동과의 관계를 끝낸 사람처럼.

이유는 간단하다. 운동이 정말 하기 싫어서다. 운동하면 건강해지고 노화도 늦출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다. 다만 그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땀 흘리고 숨차고 근육통까지 감수하는 게 영 내키지 않는다. 오래 살고 싶은 욕심도, 나이보다 젊게 살고 싶은 욕심도 별로 없다.

그런 내가 책 한 권을 읽고 조금 달려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책은 정세희의 <길 위의 뇌>다. 저자는 재활의학과 의사이자 20년 넘게 달려온 러너다. 이 책은 달리기가 뇌와 몸에 미치는 영향을 의학적 근거를 들어 설명한다.

물론 운동이 건강에 좋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다. 의사의 설명이 더해지니 한층 믿음직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운동화를 신고 나갈 만큼 마음이 움직이지는 않았다.

내 마음을 움직인 건 다른 이야기였다. 달리기에서 얻는 위로에 관한 저자의 고백이다.

“남들에게 털어놓기 힘든 일이 있거나, 이야기한다 해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아득하고 무거운 마음만 전염시킬 것 같아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었을 때, 달리러 나선다. 달리면서 위로를 받는다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사람보다 달리기에서 위로를 받는 날도 꽤 많았다.”(110쪽)

달리기에서 위로를 받는다니. 힘들 때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다는 생각은 해봤어도, 달리러 나가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기분이 울적하면 맛있는 걸 먹거나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 그것도 귀찮으면 그냥 누워 있는다. 몸이 힘든데 몸을 더 힘들게 해서 위로받는다니, 내게는 꽤 낯선 이야기였다. 게다가 달리기는 혼자 하는 운동 아닌가. 누구 하나 괜찮으냐고 물어주지도 않는데, 어떻게 위로가 된다는 걸까.

저자는 잠도 제대로 못 잘 만큼 고된 의사 생활을 하면서도 달리기를 놓지 않았다. 힘들 때면 친구에게 전화하고 싶어지듯, 저자도 어느새 달리러 나갈 준비를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한다. 그 대목이 조금 부러웠다. 마음이 힘들 때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점, 사정을 설명하거나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점이 특히 그랬다. 그저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면 된다.

물론 달린다고 고민이 사라지지는 않겠다. 풀리지 않던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리도 없다. 하지만 잠시라도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저자에게 달리기는 그런 친구인 모양이다. 특별한 조언을 해주지는 않지만,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든든한 친구 말이다.

지금까지 내게 운동은 늘 미래를 위한 일이었다. 늙어서 고생하지 않으려면 지금 땀을 흘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늘 고생해서 먼 훗날 보상을 받는 셈이다. 그러니 자꾸 미뤘다. 당장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십 년, 이십 년 뒤의 나까지 챙길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운동이 오늘의 나를 조금 덜 힘들게 해준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십 년 뒤 건강한 나보다 오늘 하루 지친 나를 위해 뛰는 편이 훨씬 마음에 든다.

요즘은 어딜 가나 달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은 러닝 크루에 가입하고, 마라톤에 나가고, 달린 거리와 기록을 공유한다. 누가 더 빨리, 더 멀리 뛰었는지 경쟁하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그 풍경을 보면서도 별로 달리고 싶지 않았다. 운동을 시작하면 또 하나의 숙제가 생길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이 책은 얼마나 빨리, 멀리 달리는가보다 왜 달리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저자의 말처럼 달리기를 평생 친구로 삼을 수 있다면 괜찮겠다. 기분이 좋을 때도 나쁠 때도 만날 수 있고,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조를 필요도 없다. 약속을 잡느라 일정을 맞출 필요도 없고, 오랜만에 찾아간다고 달리기가 서운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마침 달리기 좋은 계절이다. 한여름에는 끈적이는 땀이 싫어서, 한겨울에는 뺨을 에는 찬바람이 싫어서 못 뛴다고 둘러대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덥지도 춥지도 않다. 기후위기 탓에 이렇게 기분 좋게 뛸 날도 점점 귀해지는 듯하다. 더 미루면 날씨가 아니라 내가 문제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판이다. 하여, 이번에는 정말 뛰어볼 생각이다. 건강을 위해서도, 젊게 살기 위해서도 아니다. 달리기가 정말 위로가 되는지 궁금해서다.

 
|한성수. 내가 왜 이 일을 택했나 반평생 후회 속에 살았지만, 그래도 어느 동네 서점이라도 발견하면 홀린 듯 들어가 종이 냄새 맡으며 좋다고 웃는 책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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