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만 배불리는 과잉 입법”…의약계, ‘간소화법’ 즉각 폐기 촉구

“간소화법 도입 땐 보이콧 및 위헌소송도 불사”…반대 입장 ‘강경’
무상의료운동본부 “환자 정보 약탈법이자 의료 민영화법” 반발

김성호 기자

ksh@newsbalance.co.kr | 2023-09-27 18: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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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제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을 둘러싼 정부‧소비자단체와 보건의약계‧환자단체 간 찬반 논쟁입니다. 지난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 이후 14년 만에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이하 간소화법)’이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뒤 본회의 의결을 앞두고 있는데요.

 

간소화법 도입에 찬성하고 있는 소비자단체와 보험업계, 그리고 이 법안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보건‧의약계와 환자단체의 주장을 취재했습니다. <편집자 주>

 

  ▲이정근 대한의사협회 상근부회장(왼쪽)과 김종민 보험이사가 지난 12일 국회 앞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제공

 

[뉴스밸런스 = 김성호 기자] 실손의료 보험금 청구를 전산으로 요청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보험업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 의결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보건‧의약계와 환자단체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이하 간소화법)이 폐지를 거듭 촉구하는 등 여전히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심지어 간소화법이 시행될 경우 보이콧 및 위헌소송도 불사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대한약사회는 지난 13일 국회 앞에서 공동집회를 개최하고 법안 저지 입장을 천명했다.

이들 단체는 이날 “국회에서 마련한 간소화법(안)은 국민 편의성 확보라는 본연의 취지를 망각한 채 정보 전송의 주체인 환자와 보건의료기관이 직접 보험회사로 전송하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데이터 전송 방법을 외면하고 오직 보험회사의 편의성만 보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보건‧의약계 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실손보험 데이터 강제 전송에 절대 반대하는 입장이며, 세부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위임하여 추후에 논의하자는 얄팍한 방법으로 법안을 강제 통과시키는 행태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앞서 지난 12일에는 대한의사협회의 이정근 상근부회장과 김종민 보험이사가 국회 앞에서 개인정보 유출 및 진료기록과 관련한 의료기관의 권한 침해 가능성을 지적하며 보험업법 개정안 저지 1인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와 일부 환자단체들도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보험업법 개정안을 환자 정보 약탈법이자 의료 민영화법이라고 비난하며 폐기를 촉구했다.

이정근 상근부회장은 “이번 보험업법 개정안으로 인해 국민들이 소액 보험금을 간편하게 청구할 수 있게 되더라도, 제3자인 의료기관에 불필요한 행정적 부담과 같은 부당한 의무를 부담시키는 문제가 발생해, 결국 그 피해가 다시 국민들에게 돌아오는 등 불편을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 부회장은 “보험사가 개인의 의료 정보를 쉽게 취득하게 되면, 국민들이 보험을 가입하고 갱신할 경우 보험사가 이를 활용하게 되어, 국민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보험료 인상으로까지 이어져 국민의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라며, “국민의 개인정보 노출 위험이 있는 위험한 보험업법을 당장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종민 보험이사는 “보험업법 개정안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라는 명목 아래, 의료기관에 환자의 진료정보를 보험회사에 전송하도록 하는 의무를 부여하고, 민감한 개인 정보에 대한 국민의 권리와 진료기록과 관련한 의료기관의 권한을 일방적으로 침해하는 잘못된 법안”이라며 “특히 진료자료 전송 과정에서 환자의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향후 중계기관과 보험회사 간 정보 유출 책임 분쟁 등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아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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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근 대한의사협회 상근부회장은 "보험업법 개정안은 국민 편의성 확보라는 취지를 망각한 채 정보 전송 주체인 환자와 보건의료기관이 직접 보험회사로 전송하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데이터 전송 방법을 외면하고 오직 보험회사 편의성만 보장하고 있어 환자와 보건의약계 분노가 치솟고 있다"고 주장했다.

홍수연 치과의사협회 부회장도 이 자리에서 "환자단체도 이 개정안이 국민의 편의성 확보라는 탈을 쓰고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로 인해 소액 보험금 지급률은 높아지겠지만, 고액 보험금은 이들의 축적된 의료 정보를 근거로 보험사가 지급을 거절할 수 있는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는 조삼모사의 법안이라고 맹렬히 비판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의협은 지난 14일 별도의 보도자료를 발표, “간소화법(안)의 가장 큰 문제는 환자 진료정보가 데이터로 축적되고 이것이 나중에 보험사에서 국민의 신규 보험가입이나 가입연장, 보험금 지급 거절 등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보건의약계는 간소화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진료정보 전송거부 운동 등 보이콧과 위헌소송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서인석 대한병원협회 보험이사는 "정보 전송의 주체가 되는 환자와 보건의료기관이 자율적인 방식을 선택해 직접 전송할 수 있도록 법안에 명문화하라"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송 대행기관은 정보 누출에 대한 관리와 책임이 보장된 기관으로 엄격히 정하되, 관(官) 성격을 가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험료율을 정하는 보험개발원은 불가하다"고 강조했다.

윤영미 대한약사회 정책홍보수석도 "국민 편의 증진을 위해 보험금 청구 방식서식·제출 서류 등의 간소화, 전자적 전송을 위한 인프라 구축 및 비용부담 주체 결정 등 선결 과제부터 논의해야 한다"며 "보험사 이익을 위해 의무가 생기는 보건의약기관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자 단체들도 “보험업법이 개정되면 환자의 정보가 더 손쉽게 보험사로 넘어가 보험사가 환자를 선별하고 고액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데 사용될 것”이라고 지적하며 “사기업의 영리 행위를 위해 환자의 정보를 넘기도록 하는 것은 공익적 목적 외에 환자 정보를 타인에게 열람하도록 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 의료법·약사법과 정면으로 충돌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한국루게릭연맹회, 한국폐섬유화환우회, 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간소화법은 민간 보험사들이 건강관리서비스를 계속 확장해 건강보험의 영역을 침범하려 하며 국민들의 모든 의료정보를 통해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큰 이윤을 내기 위한 법안”이라고 반발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간소화법은 민간 보험사의 환자 정보 약탈법이자 의료 민영화법”이라며 “노동자와 시민, 환자들이 반대하는 법을 끌고 온 국회는 누굴 위해 존재하는가. 국회는 보험업법 논의를 중단하고 법을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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