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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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초등학교 6학년인 막내가 이렇게 말했다. 인종차별?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아이가 흑인을 비하하는 특정 단어로 피부가 좀 가무잡잡한 친구를 자꾸 놀린다고 했다. 최근 뉴스에서 캄보디아 범죄 사건이 보도됐을 때는 캄보디아 다문화 가정 친구를 비난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 아이가 이런 말을 할 때 반 친구들이 대부분 재밌어 하며 농담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또 아이들은 장애인과 노인을 조롱하고, 친구 부모를 욕하거나 어른들을 따라 특정 정치인을 공격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고 했다. 요즘 우리 사회 큰 문제로 떠오른 혐오의 언어가 우스갯소리로 아이들 일상에 이렇게 침투해 있다.
아이와 차별과 혐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번에 소개하는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이 큰 도움이 됐다.
이 책은 차별이 무엇이고 왜 나쁜지, 세상에는 어떤 차별이 있는지, 혐오와 차별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우리 사회에 차별금지법이 왜 꼭 필요한지 등을 이야기한다.
차별 개념은 생각보다 복잡한데, 저자 홍성수 교수는 중요한 사회문제이고 법으로 금지해야 하는 부당하고 불법적인 차별을 말한다. 인권위법에 따르면 성별, 종교, 나이, 사회적 신분 등을 사유로 고용, 교육 등 영역에서 누군가를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가 바로 차별이다.
차별금지 사유는 앞에서 열거한 사항 외에도 인종, 출신 지역,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 매우 다양하다. 말하자면 개인 정체성과 관련되는, 사회적으로 존중받아야 할 개인 특성이다. 이 특성은 개인이 선택하지 않았거나 선택에 제한이 있다. 따라서 이런 사유로 불이익을 당한다면 인간 존엄이 훼손된다.
사회는 개인이 속한 특정 조건에 따라 차별하지 않고 지위를 보장해야 한다. 이런 확신이 있어야 우리는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다. 홍성수 교수는 차별금지가 바로 이런 공존 조건을 만든다고 말한다.
한국 사회는 남녀고용평등법, 연령차별금지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단일 법안으로나마 공존 조건을 만들어가고 있다. 물론 과거에 비하면 상황은 많이 나아진 편이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체감하는 평등과 존중은 아직 부족한 현실이다.
이 현실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려면 차별을 낳는 체계, 구조, 문화를 아우르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여러 법에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이 있지만 구체적이지 않다. 그렇다 보니 일부 법을 제외하고 차별을 구제할 실질적인 방법이 없는 형편이다.
하지만 차별금지법 입법은 역차별이나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는 사람들에 의해 번번이 가로막혔다. 대표적으로 일부 종교계에서는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동성애에 반대하는 의견을 자유롭게 표명할 수 없으므로 표현의 자유가 침해된다고 주장한다. 자신들의 종교는 동성애를 금지하므로, 이는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역차별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은 종교적 신념이나 표현 자체를 규제하지 않는다. 특정 신념을 가진 사람이 누군가를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괴롭힐 자유를 금지한다. 물론 이 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차별이 즉시 사라지지는 않겠다. 다만 사회 구성원 모두가 더 안전하게 살아갈 최소한의 여건이 마련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사회적 약자에게 차별이 용인되는 세상의 폭력은 언제든지 나를 향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렇다. 어느 날 갑자기 사고를 당해 장애가 생길 수 있고, 우린 모두 하루하루 늙어간다. 불현듯 외국에 나가 노동자로 살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차별금지는 소수자를 위한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오늘 내가 다수자의 위치에 있다 해도, 우리는 언제나 누구든 소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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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조민영. 세 아이가 잠든 밤 홀로 고요히 일하는 시간을 즐긴다.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번역위원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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