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스트리트북스] 늘지 않는 수입과 줄지 않는 카드값 사이에서 번민하는 우리에게

북에디터 한성수 / 2025-10-29 00:06:45
저소비 생활 |저자: 가제노타미 |역자: 정지영 |알에이치코리아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북에디터 한성수] 이번 달 카드값이 생각보다 꽤 많이 나왔다. 여기저기 아픈 데 손보느라 병원을 좀 다니긴 했지만, 치료비와 약값을 제하더라도 계산이 너무 안 맞았다. 

 

귀찮은 마음을 꾹 누르고 한 달 치 내역을 들여다보니 머릿속에 지우개가 있는지 중복구매 한 생필품, 러닝 열풍 기사를 보다가 홀린 듯 구매 버튼을 누른 조깅화, 1+1에 혹해 일단 지른 화장품, 피로 회복에 좋다는 건강식품까지, 내 안의 또 다른 인격이 사들인 게 분명한 물건이 수두룩했다. 

 

생각해 보면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돈을 벌기 시작한 이래, 좀 더 정확히는 소비 주도권을 완전히 갖게 된 후 주기적으로 같은 문제에 부딪혔다. ‘이 정도야 어때?’ 하며 지갑을 열고, ‘이러다 큰일 나지’ 하며 며칠 씀씀이를 점검하다가, 고된 야근 후 침대에 누워 ‘이 재미라도 없으면 돈은 왜 벌어?’ 하며 쇼핑 앱을 전전하는 악순환.

 

<저소비 생활>의 저자 가제노타미도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도쿄 한복판에서 치열하게 회사를 다니며 과소비와 스트레스성 충동구매에 시달리던 평범한 직장인이다. 직장인 대부분이 그렇듯 사회생활 명목의 지출을 오랫동안 이어오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저소비 생활을 결심, 시행착오 끝에 월세 포함 한 달 생활비 70만 원을 만들어냈다. 이제는 몸도 마음도 축냈던 직장생활과 이별하고 돈과 생활 이야기를 다루는 작가이자 유튜버로 활동 중이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집어들었을 때는 별반 기대가 없었다. 극단적 절약을 다루는 재테크서야 이전에도 본 적이 있고, 그게 절대 지속가능하지 않음을 경험으로 알아서다. 

 

그런데 짐작과 달리, 저자가 전하는 건 도식화된 절약 기술이라기보다 만족하는 인생을 살기 위한 생활론이었다. 가제노타미는 나처럼 의심 많은 독자를 의식해서인지 책 첫머리에 ‘절약은 하고 싶은 일을 참는 것이 아니며, 저소비 생활 방식은 단순한 절약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로 되돌아 가는 일’이라고 말한다.

 

어떻게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지가 책장을 넘길수록 공감이 가는 건, 책에 수록된 모든 이야기가 철저하게 본인 경험에 기반해서다. 그 많은 경험담 중에 꽤 신선했던 것 중 하나가 ‘생활비 선점 방식’이다. 흔히들 저축과 절약을 위해 수입에서 저축할 돈을 먼저 빼두는 ‘선저축’을 원칙으로 세운다. 

 

하지만 저자는 아주 용감하게도 돈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일단 생활비부터 고정하라고 권한다. 수입 증감에 따라 일희일비할 일이 없고, 혹시 여유가 생겼을 때 남은 돈을 더 써버리는 걸 방지할 수 있어서다. 생활비를 먼저 정하고 그 외 돈을 액수와 상관없이 저축하는 ‘생활비 선점 방식’으로 전환하면 저축 속도가 빨라지고 의외로 낭비가 준다는 것. 저축 대신 생활비를 명확히 구획한 뒤, 더 나은 생활을 위해서 계속 벌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해방되었다고 말한다. 

 

‘생활비 선점 방식’처럼 기존 상식에 반하는 돈 관리법을 풀어놓는 중에 낭비 습관을 어렵지 않게 개선할 방법이 의외로 간단한 데 있다고 조언한다.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나 불안이 충동 소비로 이어지는 패턴을 끊기 위해 절약 의지를 불사를 게 아니라 일과 일상이 조화를 이루는 습관을 만들어보라는 것. 

 

“나는 다양한 업무방식을 경험하면서 생산성과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하면 일하기 싫어지고 쉽게 지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효율과 성과를 중시하며 매일 열심히 일할 때는 몸과 마음이 전부 피폐해졌다. 반대로 목욕, 식사 준비, 수면, 청소 등 일상에 직접 와닿는 시간을 충실히 보내자 몸과 마음이 짓눌리는 듯한 피폐함이 확실히 사라졌다. 밥을 짓거나 창문을 닦거나 바닥을 쓸거나 천천히 목욕하는 등 일상의 존재를 잊지 않고 지낼 때는 과장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108~109쪽)

 

결국 우리가 행복을 명목으로 추구해야 하는 건 열심히 벌고 절약하는 삶이 아니다. ‘내 삶에 만족하면 돈 쓸 일이 줄어든다’는 저자의 말처럼, 나는 과연 무엇에 만족하는지, 그 만족에 돈이 꼭 필요한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저소비 생활을 시작한 후 돈을 마구 쓸 때보다 행복이 훨씬 더 잘 느껴진다는 저자의 말을 되새기면서.

 

 

|북에디터 한성수. 내가 왜 이 일을 택했나 반평생 후회 속에 살았지만, 그래도 어느 동네서점이라도 발견하면 홀린 듯 들어가 종이 냄새 맡으며 좋다고 웃는 책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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