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 칼럼-국제정세의 진실] 정치지도자의 부인 '관리'와 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의 '이혼'

편집국 / 2024-09-26 14:16:00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부인들이 모두 사법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검찰 기소와 재판부 선고. 정치인 아내의 말썽은 동서고금의 흔하고 흔한 일이다. 그러나 이른바 ‘영수회담’을 하는 두 사람의 부인들이 한꺼번에 그 지경에 이른 것은 어느 나라에서도 찾기 힘들다. 부끄러운 정치현실.


두 사람만이 아니다. 역대 대통령 부인마다 자신의 처지·역할을 남편의 그것과 크게 혼동·착각해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다들 도를 넘는 정치 간섭과 인사개입, 사치와 검은 돈 받기 등의 의심을 받았다. 김영삼 대통령 부인 손명순 여사만이 그런 허물을 잡힐 데가 없었을 뿐이다.

대통령들은 그들만이 국민에 의해 선출되었다. 그래서 자신들만이 국민에게 책임지는 의사 결정권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들에게 분명히 하지 않았다. 아내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지배당했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에서 보듯 부인들은 남편의 연장선상에서 끊임없는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깊이 깨닫지 못했다. 남편을 돕기 위해 빛나야 하지만 남편을 넘어서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다.

■부인의 정치활동 때문에 이혼한 고이즈미

정치인들이 부인을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가문은 그것과 관련, 독특한 전통을 갖고 있다. 논란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상황에 비추어 참고할 필요가 있다.

2001년 총리가 된 고이즈미는 이른바 ‘퍼스트레이디’ 없이 7년 간 총리를 지냈다. 결혼 5년 만에 이혼하고 18년 간 혼자 살아 왔기 때문. 당시 자민당이나 총리 관저에서 전 부인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금기였다. 외국 방문 때도 ‘대리 퍼스트레이디’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부인은 임신 6개월이었으나 두 아들을 남기고 집을 나왔다. 정치활동에서 빚어진 일. 남편의 정치를 돕고 싶어 하는 며느리와 여자가 정치현장 일선에 나서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시집 식구들과의 갈등이었다. 3대 정치가문의 큰 아들 고이즈미 역시 아내의 정치활동에는 반대였다.

고이즈미는 29세에 첫 중의원이 되었다. 36세 때 후쿠다 다케오 총리의 주선으로 15 살 아래 대학생과 결혼했다. 그녀는 유명 제약회사 회장의 외손녀. 일찍 세상을 떠난 부친과 같은 존재였던 외할아버지는 결혼을 극심히 반대했다. 외가는 “떠나려면 몸 하나로 가라”고 했다. 전 부인은 ‘정치인의 아내’에 대한 불안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빈손으로 와도 좋다”라는 고이즈미의 말을 믿고 시집갔다. “정치가의 세계는 전혀 몰라도 된다”"라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그 말의 배경과 의미를 깨닫기엔 신부는 너무 어렸다.

고이즈미 가문은 ‘여자 중심의 가정’이면서도 “아내는 선거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가훈이 있었다. 고이즈미 어머니와 누나들은 선거를 주도했으나 정치현장에 나서지는 않았다. 그러나 장남의 아내는 자기 의견을 분명히 하고 자신의 색깔을 내세웠다.

전 부인은 2016년, 이혼 후 34년 만에 처음으로 심경을 밝혔다: “결혼 생활에서 두 번의 선거를 경험했다. 고이즈미 씨 선거구에는 강력한 후보자들이 많았다. 나는 ‘떨어지도록 할 수는 없다’는 일념으로 선거구를 돌아다녔다. 아들을 업고 요코스카 중앙역 앞에 서기도 했다.”

정치가문의 전통에 대한 괘씸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여계 가족’의 벽을 넘을 수는 없었다. 이혼으로 이어졌다. 부인은 가정법원 조정 끝에 임신한 셋째의 친권을 가졌다. 양육비는 받지 않는다는 조건. 부동산 중개사가 되어 혼자 아들을 키웠다.

고이즈미 가문과는 절연 상태. 고이즈미 총리의 어머니 장례식에 아들과 함께 문상을 갔다. 당시 정치부 기자의 회상: “두 사람이 식장에 들어가려고 했을 때 총리 비서가 막았다. 총리와 얼굴을 맞대는 것은 물론 분향·헌화도 허용되지 않았다.”

마침 고이즈미 전 총리의 둘째 신지로가 자민당 총재 경선에 나서면서 어머니를 얘기했다. 한 살 때 헤어진 어머니와 43년 만에 처음으로 만났다는 것. 그는 중 2까지 부모의 이혼이나 동생의 존재를 몰랐다. 큰고모를 ‘엄마’라 불렀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떤 사실도 말해주지 않았다. 동생과는 대학생 때 처음 만났다. 하지만 친어머니는 “길러준 고모를 배신하는 일이 될 것 같아 찾지 않았다.”

그는 “부모가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올해 처음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 좋았다. 성씨는 다르지만 가족은 가족”이라고 했다. 더 이상 말은 아꼈다.

가문의 전통을 따랐는지 신지로도 부인의 선거운동 참여를 막았다. 부인은 아나운서 출신. 도쿄올림픽 유치를 위한 IOC 총회 연설로 유명하다. 인기만 생각한다면 경선에 도움이 될 터. 문의가 잇따르자 부인 측은 “선거운동 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냈다.

남의 가정사는 함부로 말하기 어렵다. 엄격하고 냉정한 정치인이 되기 위해 비정한 남편과 아버지가 되어 버린 고이즈미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가문의 정치전통을 따르는 4대 아들은 어떤 기준으로 봐야 하는가?

■‘여성 정치’가 아닌 ‘부인 정치’를 막는 일본

일본에는 안방정치, 안방 부패를 막기 위한 그들만의 가족문화, 정치문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이즈미 전 부인이 오래 동안 철저히 입을 다물고 전혀 남편이나 시집을 비판하지 않은 것도 그러한 문화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이즈미 뿐 아니다. 일본에는 총리 부인의 두드러진 정치참여가 없었다. 전후 36명 총리 부인들 대부분은 공식 일정을 소화하거나 사회봉사 활동 등만을 했다. 사립학교 재단과 관련해 물의를 빚은 아베 신조 총리의 부인 빼고는 정치권력 행사 등으로 말썽이 된 부인은 없었다. 가이후 도시키 총리 부인이 여당 내 야당이란 평을 들을 정도.

그러나 여성 정치인들은 적지 않다. 9명 총재 경선자 가운데 여성이 2명. 동경도지사도 여성. 참의원은 27%, 중의원은 10%가 여성이다. 일본 정치문화는 여자의 정치가 아니라 부인의 정치를 극도로 경계하는 것으로 보인다.

고이즈미는 여성이기에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내각을 구성하면서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의 딸을 외무장관에 앉히는 등 5명의 여성을 장관으로 임명했다.

그는 “구조 개혁 없이 경기 회복 없다”며 작은 정부를 목표로 한 개혁을 밀어붙였다. 2001년 고이즈미 내각의 지지율은 87%. 2차 대전 후 내각으로서는 1위였다. 고이즈미는 2002년 평양회담에서 김정일이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를 공식 인정하고, 납치 피해자 중 5명을 일본에 귀국시키는 것을 승인토록 했다. 2007년 퇴임. 중의원 선거에도 나가지 않았다. 정계를 완전히 떠났다.

한 일본인은 고이즈미를 두고 “인간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차가운 총리가 좋은가?”라고 했다. 다른 사람은 “좋은 가장과 정치가의 자질은 다르다. 좋은 가장이 아니더라도 정치가로서 유능하다면 문제는 없다”고 했다. 어느 쪽이 맞는가?

나쁜 남편이 되더라도 나라를 위해 아내의 지나친 정치개입을 막아야 하는가? 아니면 착한 남편이 되어 집안이 시끄럽지 않도록 부인을 단속하지 않아야 하는가?

날마다 부인들 문제로 시끄러운 한국정치에 던져진 중대한 질문이다.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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