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 칼럼-국제정세의 진실] ‘법관의 배신’, 미국 좌경화에 크게 ‘공헌’했다…그렇다면 우리나라는?

편집국 / 2025-01-02 15:05:10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배신은 정치인만 하는 것이 아니다. 법관도 배신한다.
‘법관의 배신’은 미국에서 오래된 역사.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스스로 인정한 “임기 중 저지른 가장 바보 같은 실수”는 경제정책이나 장관 임명의 잘못이 아니었다. “얼 워런과 윌리엄 브래넌을 연방대법관으로 지명한 것.” 그는 크게 후회했다.

그는 민주당, 공화당 이념을 잘 따지지 않고 두 사람을 지명했다. “연방대법관은 법원에 대한 국민 신뢰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이념을 대변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법무장관 조언도 후회의 불씨였다.

그 결과 아이젠하워는 역사상 좌파들에게 가장 고마운 공화당 대통령으로 꼽힌다. 대신 보수우파를 절망케 했다. 미국이 사회주의 국가로 기우는 데 물꼬를 터준 대통령이란 비판까지 받는다. ‘법관의 배신’에 당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연합군총사령관이었던 아이젠하워는 연합군 사령관들 사이에서 중간의 길을 택했기 때문에 승리했다고 믿었다. 늘 중간주의를 원했다. 대통령 임기 동안 자신이 착한 사람이며, 국민들로부터 욕먹는 일을 안 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좌우를 다 아울러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그의 골프 사랑부터 모든 것을 비난했다.

그는 좌파들이 양보·타협하지 않음을 깨닫지 못했다. 보수우파들은 이념 충성도가 약하며 단결하지 않는다는 점을 잘 몰랐다. 정치의 속성, 정확하게는 좌우의 특질에 대한 인식이 모자랐다.

■연방대법원은 미국 법체계에서 법의 최종 심판자며 정치 논쟁의 중재자다. 그러나 “정치 논란에서 폭풍의 진원지”다. 본질상 정치기관이기 때문. 법은 정치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정치투쟁의 산물이다. 정치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고 명예로운, 종신 연방대법관들은 정치이념을 위해 내부에서 서로 싸운다. 외부의 각종 기관·단체들과 정치투쟁을 한다.

미국의 정치학자는 “국민들은 연방대법원을 특정 당파 이익의 압력에서 벗어나 공정하고 중립된 법의 전당으로 본다. 그러나 대법원과 정치이념, 당파성 사이에는 강한 연관성이 있다. 대법원은 정치권력의 도구다. 정치인들보다 덜 할지 모르나 대법관들도 판결할 때 상·하원, 압력단체, 대중여론에 크게 의존한다”고 주장했다.

“판사들은 중요 판결을 앞두고 자주 창가로 가 바깥에 귀 기울인다”고 한다. 데모 등 시중의 소리에 그만큼 신경 씀을 비꼰 것. 연방대법관 등이 법리만을 따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회를 근본부터 변화시키고 그 가치를 뒤집으려면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첫째 1917년 러시아에서 볼셰비키가 했던 것처럼 폭력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 그러나 자신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 둘째 민주 선거에서 승리해 의회에서 법을 바꾸는 것. 그러나 대중여론을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다.

■마지막, 혁명을 실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법원을 통하는 것이다. “당신 사람들을 최고 법원에 두라. 그 사람들이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한다면 당신은 이긴 것이다. 법원이 판결을 내리면 그 결정에 강하게 반대하는 대다수 시민들도 어쩔 수 없다.” 악법도 법이라 하기 때문. 법치국가의 역설이다.

법관이 특정 정당·정치세력의 이념에 따라 법리를 해석하면 그 정당 등은 가장 쉽게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법관들의 이런 행태가 ‘사법 행동주의’다. ‘사법 제국주의’라고도 한다. 이는 법원이 헌법의 근본 의미를 마음대로 해석해 정치 권한을 남용하고 민주 절차를 무시하는 상황을 지적하는 것이다. 사법 행동주의의 반대는 ‘사법 제한.’ 정치·사회의 갈등 문제에 대한 중립 중재자 역할 강조하는 보수주의 논리다.

미국의 첫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은 “대통령이나 의회에 비해 가장 덜 위험한 정부기관이 연방대법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가장 막강하면서도 가장 위험한 기관이 되었다. 사법 행동주의를 실천하는 연방대법관들 때문. 사법 행동주의는 좌파 법관들 전유물에 가깝다.

공화당, 민주당 모두 이념이 같은 사람들을 연방대법원에 포진시키려 격렬한 싸움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센 투쟁을 거쳐 연방대법관을 임명해도 소신을 바꾸는 법관들이 반드시 생긴다. 미국의 235년 연방대법원 역사에서 많은 ‘배신의 법관’들이 있었다. 문제는 그들은 거의 공화당 대통령들이 지명한 법관들이란 사실.

보수우파 공화당, 좌파 민주당의 이념 정당으로 갈라진 것은 1800년 대 중반. 이후 자신을 지명한 대통령의 기대를 배반한 연방대법관 10명을 꼽는다면 9명이 공화당 대통령의 지명자였다. 아이젠하워의 선택이 가장 대표 경우다.

■1953년 연방대법원장에 지명된 캘리포니아 주지사 워런은 중도 성향 공화당원이었다. 중도를 좋아한 아이젠하워에겐 안전한 선택. 하나 그는 좌파 성향이 강했던 넬슨 록펠러 전 부통령 이름을 딴 ‘록펠러 공화당원’으로 불렸다. ‘무늬만 우파.’ 아이젠하워는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

그는 1954년 브레넌을 연방대법관에 지명했다. 재선을 위해 가톨릭과 북동부 민주당 유권자 확보를 위해 가톨릭 신자였던 브레넌을 택했다. 민주당 당원이며 뉴저지주 대법원 판사였던 그를 중도 인물로 잘못 본 것. 선거만 의식한 어리석은 정치 판단이었다.

워런이 보수주의 본질은 지켜줄 것으로, 브레넌이 적어도 좌우 중간의 판결을 할 것으로 아이젠하워는 기대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15년, 37년씩 재임하면서 연방대법원 역사에서 가장 좌에 치우친 결정을 남긴 것으로 평가된다. 두 사람은 법 행동주의를 철저하게 실천했다. 미국사회 좌경화에 결정으로 기여했다.

현재 연방대법원장 존 로버츠는 공화당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지명했으나 대법관 9명의 성향을 분류할 때마다 ‘중도’ 꼬리표가 붙는다. 그는 사회주의 정책 ‘오바마케어’를 지지하는 등 부시와 보수우파들을 실망시키기 일쑤였다. 중대한 판결을 앞두면 보수우파들은 늘 로버츠가 어느 편을 들지 애태운다.

6명 공화당 지명 대법관들 가운데 로버츠 외 1-2명도 가끔 반대편에 동조하는 탓에 보수우파들은 판결 때마다 긴장한다. 그들의 배신에 탄식한다. 그러나 민주당 지명 대법관들은 좌파들을 배반하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 언제나 이념 동질성을 존중한다. 이념전쟁에서 보수우파가 고전하는 중요 이유다.

재판관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빌 클린턴부터 조 바이든 대통령 때까지 72명의 장관이 지명되었으나 민주당에서 인준 반대표를 던진 상원의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대통령은 첫 재임 때 공화당이 숱한 애를 먹였다. 이번에도 공화당 의원들이 장관 지명자들을 공개 공격하며 반대한다. 가장 큰 위협이 공화당이다.

■공화당의 기질·행태는 민주당과 너무 다르다. ‘배신과 분열’은 공화당 특질. 그러나 민주당은 좌파 이념 아래 ‘충성과 단결’로 늘 공화당을 끌고 간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무늬만 좌파’ ‘얼치기 좌파’는 극히 드물다. 거의 배신자가 없다. 좌파들의 무서운 정치 특질. 바이든의 인지능력이 심각함은 임기 초부터 민주당 유력 인물들은 다 알았다. 그러나 그가 대선 후보에서 쫓겨날 때까지 누구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공화당엔 ‘무늬만 우파’와 초당 협조라며 늘 민주당에 굴복하는 ‘유니파티(UniParty)’가 많다. 그들은 당 이념보다 자신만의 정치이념·이익을 고집해 단결하지 않는다. “공화당을 통일하는 것은 고양이를 몰고 다니는 것과 같다–화내는 고양이, 욕심 많은 고양이, 어리석은 고양이-큰 도전”이라고 할 정도.

배신을 일삼는 이들은 민주당·좌파에 맞서 싸우는 의지도 힘도 모자란다. 보수우파 국민들이 상·하원 모두 다수당으로 만들어 줘도 소용없다. 민주당 좌파정책을 폐지하지 못한다. 보수주의 정책조차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다. 민주당과 그 정부 견제에 실패한다.

공화당 대통령은 여대야소가 되어도 허약한 의원들 때문에 힘을 제대로 못쓴다. 여소야대가 되면 탄핵 등 민주당의 정치공세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결국 제도보다 사람의 문제다. 공화당 또는 보수우파의 정치 특질이 문제다. 미국 공화당과 연방대법원 역사가 증명한다.

■‘배신과 분열’은 미국 보수우파만의 특징이 아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같은 경우는 미국 민주당이나 좌파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김영삼 대통령 임기 동안 줄곧 여대야소였다. 그러나 갈수록 여당의 내부 분열이 심해지면서 김 대통령은 힘을 잃고 말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판결 때 헌재 재판관 8명 중 2명만이 야권 추천이었다. 나머지 6명 가운데 3명이 박 전 대통령 추천, 2명이 이명박 전 대통령 추천, 1명이 새누리당 추천. 그러나 8명 만장일치로 탄핵을 인용했다. 많은 보수우파들에게 6명은 ‘배신의 판사’였다.

대한민국은 또 다른 탄핵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보수우파의 특질이 어떤 결과를 만들 지 궁금하다.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 뉴스밸런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