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우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에서 활동 중인 세 명의 북에디터가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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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영 |
[북에디터 유소영] 한국은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나라 중 하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발표를 보면 2021년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은 28.3%로, OECD 평균인 11.8%의 두 배가 넘는다. 편의점 알바생, 미화원, 콜센터 상담원, 아파트 경비원 등 돌아보면 우리 주변엔 항상 비정규직이 있다.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 환경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 있어 소개한다.
<임계장 이야기>는 비정규직 노인 노동자가 일하며 겪은 이야기를 써 내려간 책이다. 저자는 공기업에서 38년간 정규직으로 일하다 60세 나이로 퇴직했다. 하지만 다시 일터에 나가야 했다. 대학 3학년인 아들은 전문대학원 진학을 원했고, 은행에서는 주택담보대출을 연장해 줄 수 없다며 빚 독촉을 해왔다. 직장에서 받았던 자녀 학자금 대출도 마저 갚아야 한다고 했다.
모든 비정규직의 삶이 그렇진 않겠지만 노인이 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저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의 경비원, 주차관리원, 청소부, 배차원 등이었다. 때문에 저자는 책 말미에 가족에게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한다.
저자의 첫 번째 직업은 작은 버스 회사의 배차계장이었다. 터미널 사람들은 그를 ‘임 계장’이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성씨를 잘못 알아 그렇게 부르는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그건 ‘임시 계약직’이라는 말에 노인 ‘장(長)’ 자를 하나 덧붙인 조합이었다. 그는 임계장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인다.
저자는 ‘나이 들면 온화한 눈빛으로 살아가고 싶었는데 백발이 되어서도 핏발 선 눈으로 거친 생계를 이어가게 될 줄은 몰랐다’고 썼다. 그는 하루에 400건이 넘는 탁송 작업을 하다 허리를 다쳤고 질병 휴가를 얻지 못해 결국 3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해고당한다.
그는 아픈 허리를 끌고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직한다. 30년 넘은 오래된 아파트 두 개 동을 담당하는 경비원으로서 각종 쓰레기 분리수거, 주차 관리, 소음 분쟁, 주민 갑질, 각종 잡역과 심부름을 도맡았다. 아파트는 가지치기, 풀 뽑기, 소독, 방역, 정화조 청소, 물탱크 청소, 페인트칠까지 등 업무에도 경비원을 동원했다. 그래도 그는 성실하게 일했다.
아파트에서 주는 급여는 생계를 유지할 정도는 됐지만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때마침 근처에 있는 고층 빌딩에서 주차 관리원 겸 경비원을 모집했다.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24시간 격일 근무제여서 그는 280만원을 손에 쥐기 위해 투잡을 뛰기로 결심한다. 퇴근이 곧 출근이고 출근이 곧 퇴근인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빌딩에서는 본부장 사모님을 몰라본 죄로 잘렸고, 아파트에서는 자치회장 심기를 거스른 죄로 결국 재계약에 실패한다.
보름을 쉬고 그는 터미널고속 보안요원으로 취직한다. 하지만 공중화장실을 마주보고 있는 지하 숙소와 공용 침구를 덮고 자야 하는 공동생활은 견디기 힘들었다. 이불장을 열면 벌레들이 무더기로 흩어졌고 침구에는 그곳을 거쳐 간 수많은 전임자의 20년 묵은 체액과 체취가 배어 있었다. 저자가 겪은 극악한 노동 환경이 생생하게 그려지며 책을 손에 놓지 못하게 된다.
저자는 책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이 시대의 비정규직이 없어지려면 또 얼마나 많은 전태일이 스스로를 태워야 하는 것일까?’ 참으로 지독한 현실이다.
아쉽지만 <임계장 이야기>는 서점에서 품절로 뜬다. 책을 읽고 싶은 분들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거나 중고 서점에서 구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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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디터 유소영 |
|북에디터 유소영. 책을 만드는 데 시간을 쏟느라 정작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한 것이 슬픈 출판 기획편집자. 요즘은 눈을 감고도 읽을 수 있는 오디오북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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