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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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렇지만 하루는 늘 비슷하게 시작된다. 해야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고, 일정은 빽빽하다.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에 24시간이 어떻게 지나갈지 대략 짐작이 간다. 그래서인지 하루를 대하는 태도도 점점 무뎌진다. ‘별다른 게 있겠어? 오늘도 어제랑 비슷하겠지.’
<하루의 가능성>은 그런 익숙한 태도를 건드린 책이었다. 자전적 소설처럼 담담하게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다 보니, 문득 의심이 들었다. 그동안 너무 쉽게 별다른 게 없다고 치부해버렸던 그 하루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을까.
저자 김병규는 시간을 연구하는 학자다. 경영학자이지만 그의 관심은 늘 시간에 머물러 있다. 사람이 하루를 어떻게 쓰고, 시간을 어떻게 인식하며 살아가는지에 대해 오래 생각해왔다. 그 관심은 삶의 아주 이른 지점에서 비롯되었다.
아직 삶의 방향을 정하기도 전이던 20대 중반, 시간은 전혀 다른 얼굴로 그에게 다가왔다. 우상과 다름없던 두 살 위 형이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한 것이다. 기적적으로 눈을 뜬 형은 숨은 쉬었지만,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수저를 들 수도, 한 발자국 걸을 수도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날 이후 그의 하루는 이전과 전혀 다른 밀도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시간은 그로부터 ‘앞으로’라는 말을 지워버렸고, 눈앞의 하루에 집중해 버티고 살아내도록 만들었다. 오늘의 무게가 버거워 다음 날을 쉽게 그려볼 수 없는 삶. 그런 시간을 오래 통과해왔다. 그 과정에서, 뜻밖에 하루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것은 미래를 향한 기대도, 더 나은 내일을 약속하는 말도 아니었다.
“하루는 거창한 꿈을 가진 사람에게는 너무 짧은 시간일 테지만, 더 나아지겠다는 마음을 품은 사람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이다. 나는 어제의 나보다 오늘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기 시작했다. 하루는 아침에 눈 떠서 밤에 잠들 때까지 대략 16시간 정도의 시간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이제 내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한 소중한 자원으로 인식되었다.” (38쪽)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흔히 기대하는 인생 조언이나 태도에 대한 처방은 없다. 대신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 하루를 어떻게 통과하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장면들이 이어진다. 병원으로 향하는 길, 반복되는 일상, 쉽게 나아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맞이하는 하루들.
우리는 보통 하루를 결과로 평가한다. 성과가 있었는지, 의미 있는 일이 있는지, 남에게 보여줄 만한 무언가가 있는지…. 그러다 보니 하루는 자주 실패로 귀결된다. 열심히 살았는데도 돌아보면 남은 게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그 때문이다. <하루의 가능성>은 그 기준 자체를 조용히 의심하게 만든다. 책에 묘사된 모든 매일은 하루를 성취의 단위로만 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준다.
그렇다고 내게 주어진 하루가 갑자기 다른 의미로 다가온 건 아니다. 여전히 할 일은 많고 일정은 그대로다. 다만 하루를 바라보는 각도는 아주 조금 달라졌다. 오늘이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 버텨낸 하루에도 분명 가능성은 남아 있다는 감각.
아마도 내일도 나는 비슷한 하루를 살 것이다. 또 지겹다고 느끼고, 또 이유 없이 허무해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하루를 마감하며 이렇게 말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오늘을 잘 살아냈다는 말은 생각보다 훨씬 큰 말이라고. 그 말 하나만으로도 하루는 전혀 다른 얼굴을 갖게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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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수. 내가 왜 이 일을 택했나 반평생 후회 속에 살았지만, 그래도 어느 동네서점이라도 발견하면 홀린 듯 들어가 종이 냄새 맡으며 좋다고 웃는 책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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