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강원과 아현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 |
[칼럼니스트 강미유] 문득 왕도 무협 소설이 떠올랐다. 주인공은 대개 외롭고 소외된 존재이나 심성이 바르다. 덕분에 기연을 만나 절세의 무공을 습득한다. 하지만 무공 실력만으로 정상에 바로 도달하진 못한다. 강호는 온갖 위험과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그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지기를 만나고 그들과 서로 의지하고 이끌어주는 과정을 거쳐 비로소 강호의 일인자가 된다.
이달 9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는 서아현 감독 본인과 게이 친구 송강원의 7년간 여정을 담았다. 무협 소설이 떠오른 이 영화의 내용은 이러하다.
서아현 감독과 주인공 송강원은 대학교 선후배 사이로 만나 같이 연극 수업을 들으면서 가까워졌고, 이후 15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해 온 오랜 친구 사이다.
![]() |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 |
7년 전 서 감독은 강원이 졸업 후 미군에 입대해 미국 시민권자가 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성 정체성으로 인해 국적을 바꿀 결심까지 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 후 강원이 아이러니하게도 주한미군으로 배치를 받아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자 강원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강원을 만나며 영화가 시작됐다.
커밍아웃 이후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강원과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며 한 번도 자신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던 아현. 성소수자인 강원을 친구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이해해보려는 데에서 출발한 영화는 종국에 감독인 아현이 스스로를 이해하고 되돌아보는 과정으로 확장된다.
제작진은 영화를 만드는 동안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며, 성소수자 당사자인 강원이 겪어나가는 문제를 옆에서 관찰하고 서술하며, 속단하거나 대상화하고 있지는 않은지 많은 고민을 거듭했다고 한다.
![]() |
송강원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 |
송강원은 “찍을만한 것이 있을까? 사실 처음에는 아현의 습작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아현이 카메라를 자주 들고 다니던 시절이었고, 이 프로젝트가 우리 관계의 연장선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며 “질문하는 아현과 답하는 나. 그 자체가 즐거웠고,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영화를 매개로 우리 모두가 어떤 깊이를 가질 수 있는 성장을 이뤄낸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또 송강원은 “성장이라는 단어 안에는 아현의 ‘마주하는 용기’가 담겨있고, 강원의 ‘받아들이는 용기’가 담겨있다”며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문구처럼, ‘두려움에 지지 않고 자기 자신이길 선택해가는’ 힘이 있는 친구. 표면적으로는 저의 이야기 같지만, 영화를 보러 오셔서 이 친구의 이야기에 힘을 얻고 가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
서아현 감독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 |
▶이하는 “이 도시 안에 우리가 발 붙일 곳이 있다면 좋겠다”는 서아현 감독과 일문일답이다.
◆‘퀴어 마이 프렌즈’라는 제목이 영화를 잘 담고 있는 것 같다. 이와 같이 제목을 정한 이유는?
-우연히 “사람만큼 이상한 존재는 없다(There’s nowt so queer as folk)”라는 스코틀랜드 속담을 접하고, “퀴어”라는 말이 원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독특하고 이상한 구석을 지칭할 때 쓰는 표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할 때에는 퀴어 당사자인 강원의 커밍아웃 스토리만을 담아내려고 했지만, 7년간 영화를 만들며 이성애자인 나 역시 비혼주의 여성으로서, 정규직을 가져보지 못한 청년으로서 이 사회에서는 이상한 존재임을 깨달았다. 제목에는 퀴어 당사자로서 강원의 삶뿐만 아니라 각자의 이유로 이 사회에 속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강원과 내가 서로의 별난 구석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이상한” 우정과 친구 관계를 담아내고자 하였다.
◆ 감독님이 소개하는 내 친구 '강원'은?
- 진실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실한 ‘관종’. 처음 강원을 만났을 때부터 막연하게 강원이 어딘가 특별한 사람인 것 같다고 느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강원이 삶에 대해 늘 최대치의 진심을 쏟아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던 듯하다.영화를 마무리 지을 때 즈음 되어서야, 나의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했던 강원의 애씀이 나에 대한 우정의 방식이기도 했음을 깨달았다. 성실한 관종이지만, 밉지 않고, 마음 씀씀이가 따듯한 강원을 관객들도 다정하게 봐주셨으면.
◆서아현 감독 본인의 이야기도 들어가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영화에 강원뿐만 아니라 나의 성찰과 성장을 담은 것은 강사라 피디님과 오희정 피디님의 의견 덕분이다. 강원의 친구로서 내가 겪은 변화가 영화 속에 함께 담길 때 이 영화의 깊이와 의미가 더해질 것이고 관객도 거기에 공감할 것이라고. 영화의 시작점은 내가 강원을 성소수자로서 바라보고 이해해 보려는 데에서 출발했지만, 영화의 마지막 지점은 내가 강원을 친구로서 한 사람으로서 이해하려 했는가에 대한 성찰로서 마무리 지었다.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결국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강원의 이야기로 세상을 바꿔보고 싶다는 치기 어린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영화를 만들며 바뀐 것은 외부의 세계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강원의 커밍아웃과 선택이 이상하게도 나에게 해방감을 주었기 때문에 카메라를 들게 됐음을 영화를 만들며 깨달았다. 이 영화를 만들며 나의 성장 과정을 인지하고 이야기로 담아내기까지 과정은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함께 끊임없이 질문하며 같이 성장해온 제작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덕분에 나도 나의 모난 점을 대면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7년이라는 결코 짧지않은 시간의 긴 촬영 기간 동안 기억에 남는 순간도, 어쩌면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을 것 같은데,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며 어떻게 작업을 계속 이어나갔는지?
-정말 7년 동안 실컷 지지고 볶았다. 영화 속에는 나와 강원 두 사람의 관계가 주로 나오지만,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친구, 스태프가 함께했다. 애정의 품앗이 공동체였다고 해야 하나. 강원과 내가 지지고 볶다가 지칠 때는 친구이자 프로듀서인 강사라 피디님이 분위기를 풀어주며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현장에서 내가 넋이 나갈 때도 많았는데 그럴 때는 송강석 촬영감독님이 방향을 제시해줘서 버텼다. 그러다가 우리 모두 지칠 때는 총괄 프로듀서인 오희정 피디님에게 많이 기댔다.
‘마이 퀴어 프렌즈’는 때로 실패하더라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기 위해 부딪히는 강원과 그런 강원의 곁에 카메라를 들고 함께 있어 보려 했던 나의 서툰 시간을 담은 이야기다. 영화를 함께 만든 분들의 청춘과 우정에 대한 헌사가 담긴 영화다. 관객에게도 그 마음이 전해질 수 있다면 좋겠다.
| 삶은 다른 곳에 있다. 때때로 예술영화, 독립영화, 다큐영화 등 다양성 영화를 만나러 극장에 간다.
[ⓒ 뉴스밸런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