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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도쿄 멜로디' |
아직 거품이 정점(1989년)에 이르기 전, 도쿄는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은 열기와 흥분으로 충만했다. 그해 5월, 프랑스 TV 다큐멘터리 감독 엘리자베스 레나드가 카메라를 들고 도쿄에 도착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일주일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 짧은 체류 동안 한 음악가의 내면이, 한 시대의 맥박이, 필름에 고스란히 새겨졌다. 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도쿄 멜로디>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1984년 분기점에 서 있었다. 신스팝 그룹 YMO(옐로 매직 오케스트라)가 해체됐고,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로 데이비드 보위와 나란히 서며 국제적 주목을 받은 직후였다. 세계는 그를 전자음악의 기수로 불렀지만, 사카모토 자신은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룹의 사운드가 아닌 개인의 언어를 찾아야 할 때가 왔음을,
때마침 유럽에서도 일본 신스팝에 대한 열기가 고조되던 시점으로 프랑스 공영방송 FR3이 그의 작업 현장을 기록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사카모토가 도쿄예술대에서 배운 현대 작곡 기법과 드뷔시를 사랑하는 성향 등이 프랑스 미디어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엘리자베스 레나드 감독은 4번째 솔로앨범 <음악도감>을 녹음 중인 사카모토의 스튜디오 문을 두드렸다. 사카모토 개인적 오퍼스가 마침내 세상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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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도쿄 멜로디' |
사카모토는 이때 초현실주의 시인 앙드레 브르통의 자동기술법에서 영감을 받아, 무의식에서 길어올린 소리를 음악으로 구조화하려 했다. YMO의 팝적 세련미에서 벗어나 미래파 예술가의 노이즈와 샘플링 기법을 끌어들이고, 앰비언트와 월드뮤직의 감수성을 접목했다.
도쿄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열 곡은 각각 독립적인 소우주처럼 존재한다. 미래파 스타일의 오프닝 ‘Futurista’에서 출발해, 미니멀한 신스 반복의 ‘Slice’, 물결처럼 흐르는 앰비언트 ‘Aqua’, 티베트 민속 리듬의 ‘Tibetan Dance’를 거쳐, 명상적 ‘Energy Flow’로 닫힌다. 러닝타임 45분, 짧고 강렬한 구성이다.
각 곡은 하나의 도감 항목처럼 독자적인 세계를 품고 있다. 장르와 국경을 가로지르는 이 시도는 당시로서는 대담한 선언이었다. 이 앨범이 이후 일본 일렉트로니카의 흐름을 바꾼 분기점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그중에서도 야노 아키코와 함께한 ‘Tong Poo’가 핵심이다. 에스닉한 멜로디와 전자음이 교차하는 이 듀엣은 단순한 실험을 넘어 인간적 온기를 담았다. 당시 사카모토의 아내였던 야노와 협연은, 음악적 실험이 동시에 삶의 언어임을 보여준다. 사카모토의 음악이 차갑고 지적인 전자음을 넘어 자연스러운 멜로디로 나아가고 있음을 선언한다.
훗날 그가 영화 <마지막 황제> 사운드트랙으로 아카데미를 수상하고, 다큐멘터리 <오퍼스>로 생의 마지막 음을 기록하기까지, <음악도감>은 그 모든 여정의 출발지로 남아 있다. 이 다큐는 바로 그 출발의 순간을 생생히 목격한 희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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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도쿄 멜로디' |
영하적 매력은 레나드 감독의 철저한 관찰자적 시선이다. 그는 설명하거나 해석하지 않는다. 다만 지켜본다. 32세의 사카모토가 스튜디오에서 즉흥 연주를 시도하고, 야노 아키코와 ‘Tong Poo’를 함께 빚어나가는 과정이 카메라 앞에 그대로 펼쳐진다.
그 날것의 생생함이 후기 다큐 <오퍼스>나 <다이어리> 등에서 보여주는 사카모토의 사색적이고 묵직한 분위기와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도쿄 멜로디>에서는 아직 모든 것이 가능성으로 열려 있던 청년 사카모토를 만날 수 있다. 창작의 순수함이 가장 빛나던 시절의 초상이다.
동시에 이 다큐는 1984년 도쿄라는 공간과 시간의 타임캡슐이다. 버블경제의 온기가 배어들기 시작한 거리 풍경, 당시 최첨단이었던 스튜디오 장비들, 네온으로 물든 밤의 도시. 사카모토가 도시의 소음과 리듬을 앨범 안으로 끌어들이려 했던 것처럼, 레나드의 카메라도 도쿄의 노이즈와 멜로디를 함께 담아냈다. 신시사이저 앞에 앉은 사카모토의 손끝과 거리를 오가는 군중의 발소리가, 이 다큐 안에서 하나의 리듬으로 포개진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나는 언제나 경계 위에 있었다”며 “전자음악과 클래식, 동양과 서양, 노이즈와 침묵. 그 경계를 넘는 것이 음악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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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도쿄 멜로디' |
|삶은 다른 곳에 있다. 때때로 예술영화, 독립영화, 다큐영화 등 다양성 영화를 만나러 극장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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